영조실록 120권, 영조 49년 3월 14일 계묘 4번째기사
1773년 청 건륭(乾隆) 38년
고 정랑 황대수에게 우의정을 증직하고, 치제하며 자손에게 벼슬을 내리게 하다
고(故) 정랑(正郞) 황대수(黃大受)에게 우의정을 증직하고, 승지를 보내서 그 묘에 치제(致祭)하였으며, 또 그 자손에게는 벼슬을 내리게 하였다. 황대수는 선조[宣廟]께서 입궁(入宮)할 때에 주서(注書)로서 〈제삼자(第三子)의 ‘삼’자를 ‘삼(參)’자로 써서〉 처변(處變)을 잘한 자였다. 임금이 그의 사적(事蹟)을 묻자 판부사(判府事)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자세한 것은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의 《경연일기(經筵日記)》에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가져다가 보고 말하기를,
"재상(宰相)은 모름지기 식견이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0책 120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449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