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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119권, 영조 48년 7월 29일 임술 7번째기사 1772년 청 건륭(乾隆) 37년

전 판서 김시묵의 졸기

전 판서 김시묵이 졸하였다. 김 시묵의 자(字)는 이신(爾愼)으로 청풍인(淸風人)이다. 고 판서 김성응(金聖應)의 아들인데, 출계(出繼)하여 부원군(府院君) 김우명(金佑明)의 봉사손(奉祀孫)이 되었다. 일찍이 문과에 올라 청현직(淸顯職)을 거쳤으며, 우리 곤전(坤殿)을 탄생시켰다. 영묘(英廟)께서 이로써 더욱 중히 여기어 병조 판서·어여 대장·총융사 겸 혜국 당상·판의금을 역임하였다. 성상의 권우(眷遇)가 날로 융성했는데 병으로 졸하니, 겨우 50여 세였다.


  •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431면
  • 【분류】
    인물(人物)

    ○前判書金時默卒。 時默爾愼, 淸風人。 故判書聖應之子, 出繼爲府院君佑明奉祀孫。 早登文科, 踐淸顯, 誕生我坤殿。 英廟以此尤爲倚重, 歷兵吏曹判書御營大將摠戎使兼惠局堂上判義禁。 聖眷日隆, 以疾卒, 年纔五十餘。


    •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4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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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