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주의 재소를 읽고 그 사림됨을 염려하다
임금이 집경당에 나아가 내국의 시임·원임 대신을 소견하였다. 임금이 승지에게 명하여 김귀주의 재소(再疏)를 읽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두 집안은 형세가 양립(兩立)할 수 없어 반드시 홍씨 집안을 폐(廢)하는 데에 감심(甘心)하려 할 것이니, 어찌 음덕(陰德)이 되겠는가? 내가 김귀주의 사람됨을 염려했었는데 과연 그렇다. 내가 믿는 것은 오직 곤전(坤殿)과 충자(冲子)뿐인데, 이런 거조를 당해서 내전의 심사가 더욱 어떻겠는가? 이는 임금을 배반하고 아버지를 배반하면서 당(黨)을 위하려는 마음이 그렇게 시킨 것이다. 그 무리들을 처치함이 한번의 호령 사이에 달린 일이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뜻이 있어서이다."
하였다. 읽기를 마치기 전에 임금이 필묵(筆墨)을 잡아 그 초(草)를 지워버리고는 주서(注書)에게 명하여 가지고 나가 특별히 향군(鄕軍)으로 하여금 그의 집으로 가 던져 놓게 하였다. 하교하기를,
"그가 망배(望拜)할 때를 엿보아 김관주에게 부탁하여 상소하는 미친 짓을 하게 하였다는데, 처분하지 않자 또 감히 상소를 올렸으니, 이는 바로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이다. 어제 고역(叩閾)173) 할 때 하교한 것을 듣고 비록 즉시 궐하에서 자결하지는 못했더라도 무슨 마음으로 그대로 하룻밤을 지내고서, 그의 숙부가 관을 벗고 길가에서 대명(待命)하고 있는데도 그 무리들은 예삿 일로 보고 말하기를, ‘내 마음이 옳은데, 어찌 숙부의 해괴한 거동을 따르랴?’ 하였다. 기묘년174) 의 거조는 오로지 나라를 위해서이니, 그들의 도리에 있어서는 마땅히 밤낮으로 두려워해야만 할 바로서 비록 사실(私室)에 있더라도 감히 큰 소리를 내지 못해야 하는데도, 이제 의기 양양하게 스스로 담당하여 임금과 아버지는 생각하지 않고 이러한 망측한 행동을 일으키어 김관주를 향도(鄕導)로 삼아 때를 넘기지 않고서 이 상소를 올렸는데 한 방에서 함께 써서 앞뒤로 두 번 올린 것이 간폐(肝肺)를 보는 것 같다. 척신으로서 척신을 공격하는 것이 공격한 것뿐만이 아니고 반드시 구덩이에 묻은 후에야 그만두려 한 것이니, 이렇게 하고서 그 나라가 흥하겠는가, 망하겠는가? 구상을 친문(親問)하는 것도 오히려 차마 못하였는데, 이 사람이 마음을 고치기 전에 내 마음이 어찌 상시(常時)와 같겠는가?"
하였다. 임금이 이경호(李景祜)에게 이르기를,
"경이 나가서 김귀주를 보고 그로 하여금 육단 부형(肉袒負荊)175) 하고 금오문(金吾門) 밖에서 석고 대죄(席藁待罪)하게 하라."
하니, 이경호가 나갔다가 와서 복명하기를,
"그가 이미 개양문(開陽門) 밖에서 석고 대죄하고 있는데 관을 벗고 부형(負荊)하였으며, 그의 동생 역시 그 옆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경호의 아뢴 바가 온화한 모습으로 잠시 머뭇거렸다 하여 특별히 그 직책을 파하고 다시 김귀주를 가서 보게 하였다. 또 선전관으로 하여금 가서 형상을 보게 하고 당심(黨心)을 자복하게 하여 고음(拷音)176) 을 받게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사실(私室)에서 서로 말하기를, ‘임금이 이미 늙었으니 이 사람과는 양립할 형세가 아닌데, 이제 만약 제거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네가 이로써 먼저 상소하면 내가 또 잇따라서 올리겠다.’고 하면서 여덟 자의 음참(陰慘)한 말로써 온실수(溫室樹)를 묻지 말라는 경계를 생각하지 않고 공공연히 협잡하였으니, 이 역시 먼저 해야 할 일인가? 이 사람 저 사람이 협찬(協贊)했음은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들이 제거하려 한 것도 당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두 가지 일은 오히려 근본이 있으나 ‘헤아리기 어렵다.[叵測]’는 두 자 역시 기축년177) 전의 일인가? 그 사람이 이제 장차 국정을 잡게 되었으니, 당심은 혹시 말을 할 수 있겠으나 창해(滄海)에 떠 있는 한 마리의 오리나 기러기에 불과한데, 이처럼 감심(甘心)하니 이것은 무슨 뜻인가? 모름지기 지만(遲晩)하라고 말하지 마라."
하였다. 복명하기를,
"김귀주가 공초하기를, ‘실로 어리석고 경솔함을 인연해서 무지하게 망령된 행동이 당습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감히 성교(聖敎)로 엄히 묻는 아래에서 변명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미진하다는 것으로써 자복하기를 재삼 독촉하였다. 김귀주가 ‘차후에 만약 다시 이런 마음이 싹튼다면 장차 임금을 저버리고 선인(先人)을 저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공초를 바치니, 임금이 이담(李潭)에게 이르기를,
"이 공초가 어떠한가?"
하니, 이담이 말하기를,
"‘이후에 만약 다시 조금이라도 마음이 싹트면 임금을 저버리고 선인을 저버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다시 염려하여 무엇을 더 물을 것이 있겠습니까?"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아름다운 소식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42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註 173]고역(叩閾) : 임금께 직접 호소함.
- [註 174]
기묘년 : 1759 영조 35년.- [註 175]
○上御集慶堂, 召見內局時原任大臣。 上命承旨, 讀金龜柱再疏。 上曰: "兩家勢不兩立, 必欲甘心於廢洪家, 豈爲陰德耶? 予慮龜柱之爲人矣, 今果然。 予之所恃, 惟坤殿與沖子, 而當此擧措, 內殿心事, 尤當如何? 是乃背君背父爲黨之心所使也。 處置渠輩, 不過一號令間事, 而不爲此者, 意有在也。" 讀未畢, 上執筆墨抹其草, 命注書持出, 特使鄕軍, 往投其家。 敎曰: "闖其望拜之時, 囑觀柱作狂擧投章, 而不爲處分, 又敢呈章, 此正一而二, 二而一也。 昨聞叩閾時下敎, 雖不能卽時自刎於闕下, 何心因仍經宿, 而其叔免冠待命於道傍, 渠輩視之尋常, ‘曰余心是矣, 其何從叔之駭擧也? 己卯擧措, 專爲邦國, 則在渠之道, 所當夙夜澟惕, 雖私室不敢高聲, 而今乃揚揚自當, 不顧君不顧先, 作此罔測之擧, 以觀柱爲鄕導, 不逾時而呈此, 一室同書, 先後兩擧, 若見肝肺。 以戚臣攻戚臣, 不但攻也, 必欲置之坑坎而後已, 若此而其國興乎亡乎? 親問具庠而此猶不忍, 此人不革心前, 予何心若常時乎?" 上謂李景祜曰: "卿其出見龜柱, 使之肉袒負荊, 席藁待罪於金吾門外。" 景祜出而復命曰: "渠已席藁待命於開陽門外, 而免冠負荊, 其弟亦待命於其側矣。" 上以景祜所奏之雍容假豫, 特罷其職, 復使往見金龜柱處。 又使宣傳官往見形狀, 使之以黨心自服捧拷音, 又敎曰: "於私室相謂曰, 君已衰暮, 此人勢不兩立, 若不今祛, 其將若何? 汝以此先投章, 余又繼呈’, 而以八字陰慘之說, 不思溫室樹之戒, 公然挾雜, 此亦爲先乎? 彼此人協贊, 國人皆知也。 其欲除去, 亦非黨心而何? 二件事, 猶有本焉, 叵測二字, 亦己丑前事乎? 其人今將秉國, 雖黨心容有可說, 今不過滄海之一鳧雁, 若是甘心, 是何意也? 須無辭遲晩。" 復命曰: "龜柱供, 實緣愚蠢狂率, 無知妄作, 其出於黨習, 何敢發明於聖敎嚴問之下云爾?" 上以其未盡, 再三促其自服。 龜柱以 ‘此後若復萌此心, 則將作負君負先之人’納供, 上謂李潭曰: "此供何如?" 潭曰: "此後若復有一分萌心, 負君背父云爾, 則豈復有慮而有何更問乎?" 上曰: "然則美消息也。"
-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42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註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