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임 대신과 예조 당상을 소견하고 묘호에 대해 논의하다
임금이 시임 대신·원임 대신·예조 당상을 소견하고, 말하기를,
"묘(廟)를 세운 후 묘호(廟號)는 무슨 자를 써야 하겠는가?"
하였는데,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이 말하기를,
"신 등이 밖에서 상의하였는데, 조경묘(肇慶廟)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 승지에게 명하여 고유문(告由文)과 반사문(頒赦文)을 독주(讀奏)하게 하였다. 하교하기를,
"이 일은 지극히 중대하여 그 청한 것이 진실로 어렵지만, 이미 두 차례 문의(問議)하기에 이르렀으니, 어떻게 감히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만약 불만(不滿)의 뜻이 있으면, 이는 해동(海東)의 신자(臣子)가 아니다. 이미 본주(本州)로 정했으면 단(壇)을 설치하고 묘(廟)를 세우는 일을 일체로 하도록 하라. 내가 나이 장차 80세가 되어 거의 13세(世)의 얼굴을 뵈올 일이 있게 되었는데, 이제 하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특별히 시임 대신·원임 대신·예관을 불러 하교하고, 또 충자(冲子)에게 명하여 내일 아침 창덕궁(昌德宮)에 나아가 나를 대신해서 아뢰게 할 것이니, 삼국(三國) 때 시조묘(始祖廟)를 세웠던 전례에 의거하여 본주(本州) 경기전(慶基殿) 곁에 묘를 세우고, 위판(位版)은 ‘시조 고 신라 사공 신위(始祖考新羅司空神位)’라고 쓰고, 비(妣)의 위판은 ‘시조 비 신라 경주 김씨(始祖妣新羅慶州金氏)’라고 쓰고, 묘호(廟號)는 ‘조경묘(肇慶廟)’라고 하되, 제물(祭物)은 경기전의 전례에 의거하고, 묘관(廟官) 또한 경기전의 예에 의거하여 서울에서 차송(差送)하도록 하라. 아! 이날의 이 일은 오르내리시는 영령(英靈)께서 지도(指導)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경사를 합해서 과거를 설행하되, 이름을 ‘양경 정시(兩慶庭試)’라고 하여 20인을 뽑을 것이며, 고유문(告由文)·반사문(頒赦文)을 첨서(添書)하여 내리도록 하라."
하였다.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이 말하기를,
"이 일은 막중한 일이므로, 기초를 닦을 때 오로지 도신에게만 위임할 수 없습니다. 신이 마땅히 내려가서 봉심(奉審)하고 오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였다. 예조 판서 정홍순(鄭弘淳)이 말하기를,
"축사(祝辭)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제문(祭文)의 머리말은 ‘효 증손(孝曾孫) 국왕(國王)’이라고 일컫는 일을 향실(香室)로 하여금 자세히 알게 하고, 상량문(上樑文)은 문임(文任)으로 하여금 짓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1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97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사법-행형(行刑)
○上召見時原任大臣禮堂。 上曰: "建廟後廟號用何字耶?" 領議政金致仁曰: "臣等自外相議, 以肇慶廟稱之似好矣。" 上曰: "好矣。" 命承旨, 讀奏告由及頒赦文。 敎曰: "玆事至重至大, 其請誠難, 而旣至再次問議, 則焉敢有異議? 若有不滿之意, 則此非海東臣子也。 旣定本州, 則設壇建廟一也。 予年將八十, 庶有拜十三世之顔, 及今不爲, 更待何時? 特召時原任禮官下敎, 又命沖子, 明朝詣昌德宮, 代予替奏, 依三國時建始祖廟例, 建廟于本州慶基殿傍, 位版書以始祖考新羅司空神位, 妣位版, 書以始祖妣新羅 慶州 金氏, 廟號曰肇慶, 祭物一依慶基殿例, 廟官亦依慶基殿例, 自京差送。 嗚呼! 此日此擧, 無乃陟降指導乎? 今番合慶設科, 名曰兩慶庭試, 取二十人, 告由文頒赦文, 添書以下矣。" 領議政金致仁曰: "此是莫重之事, 開基之時, 不可專任道臣。 臣當下去, 奉審以來矣。" 上曰: "是矣。" 禮曹判書鄭弘淳曰: "祝辭何以爲之乎?" 上曰: "祭文頭辭, 稱孝曾孫國王事, 令香室知悉, 上樑文令文任爲之。"
- 【태백산사고본】 78책 11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97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