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손과 창덕궁에 나아갔다가, 정업원에 나아가 사배례를 행하다
임금이 왕세손을 거느리고 창덕궁(昌德宮)에 나아갔다가, 이어서 정업원(淨業院)에 나아갔다. 이때 임금이 사릉(思陵)의 능역(陵役)으로 인하여 사릉의 옛일에 대해 물었는데, 승지 임희교(任希敎)가 전 참판 정운유(鄭運維)가 그 사적(事蹟)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우러러 대답하니, 임금이 정운유에게 명하여 정업원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입시토록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성후(聖后)께서 언제 이곳에 와서 거주하셨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어느 해인지 징험할 만한 문자가 없습니다. 그 당시 광묘(光廟)353) 께서 정순 왕후(定順王后)가 외롭게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경중(京中)에 집을 내려 주고자 하였으나, 왕후께서 동문(東門) 밖의 동쪽 땅이 바라보이는 곳에 살기를 원하니, 재목을 내려 주어 짓도록 명하였는데, 이것이 곧 정업원 기지(基址)입니다. 그런데 사형(師兄) 윤씨로 이름이 혜은(惠誾)인 사람 처소의 금득(衿得)이라는 자에 대해 지금 그 문안(文案)이 아직도 신의 집에 있으므로 알고 있습니다. 문서(文書) 가운데 사당(祠堂) 3간, 숙설청(熟設廳) 2간이라는 글이 있었으니, 성후(聖后)께서 친히 이곳에서 단묘(端廟)의 제사를 행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신의 선조 정미수(鄭眉壽)로 하여금 시양(侍養)하도록 정한 후 신의 선조 집으로 이어(移御)하셨는데, 대개 시양을 정하기 전에 정업원 주지 노산군 부인(魯山君夫人)이라고 일컬었으나, 이것은 불씨(佛氏)를 숭신(崇信)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의 선조는 성후와 어떤 친척이 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의 선조는 곧 문묘(文廟)354) 의 외손(外孫)이고, 경혜 공주(敬惠公主)355) 의 아들입니다. 이 때문에 성후께서 신의 선조로 하여금 시양하게 하셨고, 신의 집에서 예척(禮陟)356) 하셨던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당시 경의 집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지금 광은 부위(光恩副尉) 김두성(金斗性)의 집입니다."
하였다. 인하여 임금이 정운유에게 가자(加資)하도록 명하였다. 이보다 앞서 임금이 정업원의 유지(遺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비석을 세워 표지(表識)하게 하였다. 비석이 완성되자 임금이 먼저 창덕궁에 나아가 진전(眞殿)에 비석 세운 일을 직접 아뢰고, 이어서 정업원 유지에 거둥하여 비각(碑閣)을 봉심(奉審)하고, 비각 앞에서 사배례(四拜禮)를 행한 다음 말하기를,
"오르내리시는 성후의 영령(英靈)께서 오늘 반드시 이곳에 임어하셨을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친히 ‘동망봉(東望峰)’ 세 글자를 쓰고 원(院)과 마주 대하고 있는 봉우리 바위에 새기도록 명하였는데, 곧 정순 왕후가 올라가서 영월(寧越) 쪽을 바라다보던 곳이다. 환궁[回鑾]할 때 동관왕묘(東關王廟)와 광은 부위 김두성의 집에 두루 임어하였다. 이어서 육상궁(毓祥宮)에 나아갔다. 임금이 공주의 집을 두루 임어할 때 전상(前廂)·후상(後廂)이 머물지 않음으로써 시위(侍衛)가 동구(洞口) 앞을 곧바로 지나쳤다 하여 특별히 병조 판서 구선행(具善行)을 파직하고 조엄(趙曮)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여러 승지들을 아울러 체차(遞差)하고 정운유(鄭運維)·김치양(金致讓)·이수봉(李壽鳳)·신상권(申尙權)·여선덕(呂善德)·신대현(申大顯)으로 대신하게 하였는데, 여선덕은 당시에 통례(通禮)로서 어가(御駕)를 배종(陪從)한 때문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1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94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 /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註 353]광묘(光廟) : 세조(世祖).
- [註 354]
○癸卯/上率王世孫, 詣昌德宮, 仍詣淨業院。 是時, 上因思陵陵役, 訪問思陵舊事, 承旨任希敎以前參判鄭運維詳知其事蹟仰對, 上命運維來待於淨業院入侍。 上曰: " 聖后何時來住此地?" 對曰: "年紀無可徵文字。 而其時光廟憐定順王后孤孑無依, 欲賜第於京中, 后願得東門外望東地居之, 命賜材木造成, 卽淨業院基址。 而師兄尹氏名惠誾處衿得者, 今其文案, 尙在臣家, 故知之。 文書中, 有祠堂三間, 熟設廳二間之文, 聖后之親行端廟祭祀於此處明矣。 以臣先祖名眉壽, 定侍養, 後移御臣祖家, 蓋未定侍養之前, 稱淨業院住持魯山君夫人, 此非崇信佛氏也。" 上曰: "卿祖於聖后, 爲何親?" 對曰: "臣先祖, 卽文廟外孫, 而敬惠公主子也。 是故, 聖后以臣祖定侍養, 而禮陟於臣家矣。" 上曰: "其時卿家, 在於何處?" 對曰: "卽今光恩副尉 金斗性家也。" 上仍命鄭運維加資。 先是, 上聞凈業院遺址之在此, 故竪碑識之。 及碑成, 上先詣昌德宮, 口奏竪碑事於眞殿, 仍幸淨業遺址, 奉審碑閣, 行四拜禮於閣前, 曰: " 聖后陟降之靈, 今日必臨於此矣。" 親書東望峰三字, 命鐫於院之對案峰石上, 峰卽定順王后登臨望寧越之處也。 回鑾時, 歷臨東關王廟及光恩副尉 金斗性家。 仍詣毓祥宮。 上之歷臨主第時, 以前後廂之不爲留駐, 侍衛之直過洞口前, 特罷兵曹判書具善行, 以趙曮代之。 竝遞諸承旨, 以鄭運維ㆍ金致讓ㆍ李壽鳳ㆍ申尙權ㆍ呂善德ㆍ申大顯代之, 善德, 時以通禮, 陪駕故也。
- 【태백산사고본】 78책 11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94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 /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註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