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형을 잡아들여 친국하다
임금이 건명문(建明門)에 나아가 여선형(呂善亨)을 잡아들이도록 명하여 친히 추문(推問)하고 형벌을 가한 다음, 하교하기를,
"억지로 잇달아 아뢰면서 그 이름을 들어 말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장심(將心)267) 인 것이다. 특별히 일률(一律)을 용서하여 흑산도(黑山島)의 서민(庶民)을 삼도록 하라."
하였는데, 대사헌 한광회(韓光會)와 대사간 홍술해(洪述海)가 엄중히 추국(推鞫)하기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사신은 말한다. "인(䄄268) ·진(禛)269) 은 어리석고 무지(無知)하였으니 어찌 마음먹은 것이 있었겠는가마는, 성상께서는 대개 당인(黨人)들이 붙좇아 다른 날 국가에 대항할 것을 염려하여 대계(臺啓)가 일어나는 것을 핍박하여 해도(海島)에 찬축(竄逐)함으로써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방비하는 계책을 삼는 것이었다. 진은 곧 병들어 죽고 인은 겨우 육지로 나오게 하였으나, 성심(聖心)은 오히려 의심과 염려를 지나치게 허비하여 일찍이 하루도 인을 잊지 않았었다. 여선형은 본래 허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으로, 임금의 가까운 자리를 지킨 적이 없었으므로, 천위(天威)가 황공(惶恐)하여 잘못 조치하여 ‘인(䄄)’ 자를 빠뜨리기에 이르렀으나, 이것은 다른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천노(天怒)가 점차 격렬해져 정국(庭鞫)을 베풀어 형벌을 가하였으나, 대신이 된 자들이 한마디도 그만두기를 간하지 못하여 성조(聖朝)에서 중도에 지나친 거조가 있게 하고, 대신(臺臣)으로 하여금 생재(眚災)270) 의 형벌을 받게 하였으니, 황각(黃閣)271) 에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78책 11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8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사법-행형(行刑)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역사-사학(史學)
- [註 267]장심(將心) : 금장지심(今將之心). 《춘추(春秋)》 공양전(公羊傳)에 말하기를, "임금의 친척에게는 장(將)이 없고, 장이 있으면 반드시 벤다.[君親無將 將而必誅]"고 하였는데, 《한서(漢書)》 숙손통전(叔孫通傳)을 보면 "인신에게는 장이 없어야 한다.[人臣無將]"하고, 그 주(注)에 "장은 역란을 말한다.[將謂爲逆亂也]"라고 하였음. 그러므로 장차 난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려는 불충(不忠)한 마음을 품는 것을 말함.
- [註 268]
인(䄄 : 은언군(恩彦君).- [註 269]
○上御建明門, 命拿入呂善亨, 親問加刑, 敎曰: "强爲聯啓, 不擧其名, 此將心。 特貸一律黑山島爲庶民。" 大司憲韓光會ㆍ大司諫洪述海更請嚴鞫, 不允。
【史臣曰: 䄄ㆍ禛, 以蒙騃無知, 有何生心, 而聖上蓋慮黨人趨附, 他日耦國, 逼發臺啓, 竄逐海島, 爲防微杜漸之策。 禛卽病死, 䄄纔出陸, 而聖心猶過費疑慮, 未嘗一日忘䄄也。 善亨 〔素〕 虛怯, 無守咫尺, 天威惶恐失措, 至遺䄄字, 此非有他腸也。 天怒轉激, 庭鞫加刑, 爲大臣者, 不能一言諫止, 致聖朝有過中之擧, 俾臺臣被眚災之刑, 其可曰黃閣有人乎哉。】
- 【태백산사고본】 78책 11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8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사법-행형(行刑)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역사-사학(史學)
- [註 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