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민을 불러 황구 첨정과 백골 징포의 폐단 등에 대해 묻다
임금이 건명문(建明門)에 나가서 직산 어사(稷山御史) 심이지(沈頤之)에게 서계(書啓)를 읽고 아뢰도록 명하였으며, 또 향민(鄕民)을 불러 황구 첨정(黃口簽丁)과 백골 징포(白骨徵布)123) 의 폐단을 묻고 하교하기를,
"아! 그 황구(黃口)는 그들이 비록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 사람은 있겠지만 백골(白骨)에 이르러서는 어느 곳에다 미루어 징수하겠는가? 지금 들은 바로는 그것이 오히려 15구(口)나 된다고 하는데, 설령 한 현(縣)에 한 구(口)라 하더라도 3백 60고을로 말한다면 이는 벌써 죽어서 뼈만 남은 3백 60명에게 면포를 징수하는 것이니, 화기(和氣)를 감응하게 하여 손상시킴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아! 만약 신묘일기(辛卯日記)와 좌규(左揆)124) 의 아뢴 바가 아니었으면 또한 어떻게 염문(廉問)하는 거조(擧措)가 있었겠는가? 대저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기 마련이니 지금은 비록 균역(均役)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뒷날 폐단이 생기는 일이 없을 것을 알겠는가? 겨우 수십년이 지났는데 폐단이 다시 그전과 같으니, 한탄스러움을 이루 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것으로 관찰해 보면 지난번에 면포를 줄여 주고 순문(詢問)하던 때에 고(故) 최 봉조하(崔奉朝賀)의 헌의(獻議) 가운데 ‘수령을 가려 뽑아야 한다[擇守令]’는 세 글자에 대하여 그 당시에 가상히 여긴다고 말하였지만 오늘날에야 바로 징험(徵驗)이 된다. 아! 양역(良役)에 대한 폐단이 어찌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지금 이 하교를 비국(備局)으로 하여금 팔도(八道)와 양도(兩都)에 반포(頒布)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16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78면
- 【분류】군사-군역(軍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丁亥/上御建明門。 命稷山御史沈頤之, 讀奏書啓, 又召鄕民, 問黃口簽丁白骨徵布之弊。 敎曰: "嗚呼! 其於黃口, 渠雖莫知, 猶有其人也, 至於白骨, 推徵於何地? 今者所聞, 其猶十五口, 設令一縣一口, 以三百六十州言之, 是徵布於三百六十旣骨之人, 感傷和氣, 孰大於此? 噫! 若非辛卯日記及左揆所奏, 亦豈有廉問之擧乎? 大抵法久弊生, 今雖均役, 焉知無他日生弊? 而纔過數十年, 弊復如前, 可勝歎哉? 以此觀之, 頃者減布詢問之時, 故崔奉朝賀獻議中, 擇守令三字, 其時曰嘉, 今日乃驗。 吁嗟! 良役之弊, 何至於此? 今者此敎, 令備局頒布於八道兩都。"
- 【태백산사고본】 78책 116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78면
- 【분류】군사-군역(軍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