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115권, 영조 46년 7월 4일 무신 1번째기사
1770년 청 건륭(乾隆) 35년
좌의정 한익모가 정몽주의 봉사손을 녹용할 것을 청하다
임금이 주강(晝講)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는데, 좌의정 한익모(韓翼謨)가 말하기를,
"고려 충신 정몽주(鄭夢周)는 열성조(列聖朝)로 내려오면서 많은 포가(褒嘉)를 받았고 당저(當宁) 이래로도 봉사손을 녹용하라는 명령이 연이어 내려졌습니다. 지금 그 봉사손(奉祀孫)이 임기가 차서 산직(散職)으로 되었으니, 다시 기용하는 은전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포은(圃隱)의 충절은 내가 일찍이 탄모(歎慕)하였기 때문에 선죽교(善竹橋)에 비석을 세우도록 하고 비석에 쓰기를, ‘도덕(道德)과 정충(精忠)이 만고에 뻗쳐 태산과 같이 높은 절개를 지닌 포은공[道德精忠亙萬古 泰山高節圃隱公]’이라고 하였다. 진작 녹용하라고 명하였는데, 어찌하여 그처럼 지체하고 있는가? 특별히 승륙(陞六)하여 조용(調用)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7책 115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5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