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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4권, 영조 46년 5월 1일 정축 2번째기사 1770년 청 건륭(乾隆) 35년

팔도와 양도에 측우기를 만들어 우수의 다소를 살필 것 등을 명하다

세종조(世宗朝)의 옛 제도를 모방하여 측우기(測雨器)를 만들어 창덕궁(昌德宮)과 경희궁(慶熙宮)에 설치하라고 명하였다. 팔도(八道)와 양도(兩都)에도 모두 만들어 설치하여 우수(雨水)의 다소를 살피도록 하고, 측우기의 척촌(尺寸)이 얼마인가를 치계(馳啓)하여 알리도록 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이는 곧 옛날에 일풍 일우(一風一雨)를 살피라고 명하신 성의(聖意)를 본뜬 것이니,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는가? 듣건대,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측우기는 석대(石臺)를 만들어 안치(安置)하였다고 하였다. 금번 두 궁궐(宮闕)과 두 서운관(書雲觀)에 모두 석대를 만들되 높이는 포백척(布帛尺)으로 1척이요, 넓이는 8촌이며, 석대(石臺) 위에 둥그런 구멍을 만들어 〈측우기를〉 앉히는데, 구멍의 깊이는 1촌이니, 경신년126) 의 신제척(新製尺)을 사용하라."

하였다. 대체로 〈경신년의 신제척은〉 경신년에 삼척부(三陟府)에 있는 세종조 때의 포백척을 취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참고해서 자[尺]의 규식(規式)을 새로이 만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77책 114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52면
  • 【분류】
    도량형(度量衡) / 과학-천기(天氣)

○命倣世宗朝舊制, 造測雨器, 置昌德 慶熙兩闕。 令八道兩都皆造置, 俾審雨澤多少, 以測雨器尺寸幾何, 馳啓以聞。 仍敎曰: "此卽體昔年一風一雨命審之聖意, 何敢放忽? 聞實錄以爲, 測雨器設石以置。 今者兩闕兩雲觀, 皆造石臺, 高布帛尺一尺, 廣八寸, 臺上造圓穴安之, 穴深一寸, 用庚申新製尺。" 蓋庚申取三陟府在所世宗朝布帛尺, 參考《大典》, 新製尺式也。


  • 【태백산사고본】 77책 114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52면
  • 【분류】
    도량형(度量衡)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