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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4권, 영조 46년 2월 12일 기미 2번째기사 1770년 청 건륭(乾隆) 35년

형고를 맡은 낭청에게 《문헌비고》에 형을 신중히 하라는 하교를 편입케 하다

편집청(編輯廳)의 당상과 낭관을 불러 초(抄)한 것을 읽어 아뢰게 하였다. 하교하기를,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신중(愼重)하고 신중하여 형(刑)받는 자를 불쌍히 여기라.’고 하였고, 한(漢)나라 문제(文帝)도 말하기를, ‘몸에 형(刑)을 가하면 다시 붙지 못한다.’고 하였다. 압슬(壓膝)과 낙형(烙刑)의 두 가지 형벌은 이미 제거하였다. 앞으로는 비록 국문(鞫問)할 죄수라 하더라도 일체 도둑을 다스리는 형벌[治盜之刑]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강도(强盜)가 아닌데도 난장(亂杖)이나 주리의 형벌[周牢之刑]을 사용한 경우에는, 서울은 대관(臺官)이 적발하고 지방의 경우는 도신(道臣)이 계문하여 호소할 데 없는 나의 백성으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하는 일이 없게 하라."

하고, 이어 형고(刑考)를 맡은 낭청(郞廳)에게 《문헌비고(文獻備考)》에 이 하교를 편입(編入)하라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7책 114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48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출판-서책(書冊)

○召編輯堂郞, 讀奏所抄。 敎曰: "《尙書》曰欽哉欽哉, 惟刑之恤哉, 亦云, 刑者不可復屬。 壓烙二刑, 旣除之。 此後則雖關係鞫囚, 切勿用治盜之刑, 非强盜而用亂杖周牢之刑者, 內而耳目紏繩, 外而道臣啓聞, 使吾無告之民, 先陷焉。" 仍命刑考郞廳, 編入此敎於《備考》


  • 【태백산사고본】 77책 114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48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