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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4권, 영조 46년 1월 14일 임진 4번째기사 1770년 청 건륭(乾隆) 35년

민간에서 《소학》 및 훈민가를 외워 익히게 할 것을 제도에 하유하다

임금이 주강을 행하였다.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여러 도에 하유(下諭)하여 민간으로 하여금 《소학(小學)》 및 훈민가(訓民歌)를 외워 익히게 하였다. 좌의정 한익모(韓翼謨)가 말하기를,

"《소학》의 고강(考講)은 법의 취지가 아름다운 것이었으나, 유명 무실하게 되었으니, 실로 개탄스럽습니다. 하호 세민(下戶細民)에 있어서는 교도(敎導)할 방법이 없고, 속습(俗習)은 무지하여 윤리(倫理)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고 상신 정철(鄭澈)은 이를 염려하여 훈민가를 지었는데, 모두 18장(章)이요, 그 내용은 민생의 일용 사물(日用事物)과 평범한 윤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시골의 부녀(婦女)와 아이들로 하여금 항상 외우게 하여 감동, 분발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 이를 팔도에 신칙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외워 익히게 하면, 거의 모두 대의(大意)를 알아서 백성을 교화하여 양속(良俗)을 이루게 하는 방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청컨대 《소학》의 고강과 아울러서 다같이 신칙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 명을 내린 것이다. 사헌부에서 전계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사간원 【헌납(獻納) 권영(權穎)이다.】 에서 전계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일전에 외방으로 보직된 찰방이 숙사(肅謝)하러 들어옴에 있어 사알(司謁)이 구전(口傳)으로 된 상교(上敎)로 문을 열고자 하였는데, 승지가 신표(信標)가 없다 하여 불허하자 사알이 열쇠를 함부로 가지고 갔으나, 승지가 금지시키지 못하였다 합니다. 청컨대 해당 승지를 파직하고 사알은 유사(攸司)로 하여금 치죄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승지에 관한 일은 아뢴 바에 의하여 윤허하나, 사알의 일은 그 허물이 중관(中官)에게 있으니, 해당 중관에게 서용치 않는 율을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7책 114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45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어문학-문학(文學)

○上行晝講。 引見大臣備堂。 下諭諸道, 令民間誦習《小學》《訓民歌》。 左議政韓翼謩曰: "《小學》考講, 法意非不美矣, 而有名無實, 固已慨然。 至於下戶細民, 敎導無法, 俗習貿貿, 不知倫彝之爲何物。 故相臣鄭澈, 爲是之懼, 作《訓民歌》, 凡爲十八章, 而其言不出於民生日用彝倫之間, 欲使村閻婦孺, 尋常佩誦, 有所感發。 今若以此申飭八路, 使民誦習, 則庶幾皆知大意, 有補於化民成俗之方。 請與《小學》考講, 一體申飭。" 上有是命。 憲府申前啓, 不允。 諫院 【獻納權穎。】 申前啓, 不允。 又啓: "日前補外察訪之入謝也, 司謁口傳上敎, 欲爲開門, 承旨以無標信不許, 則司謁輒取開金以去, 而承旨不能禁云。 請當該承旨罷職, 司謁令攸司科治。" 上曰: "承旨事依允, 司謁事, 其咎在於中官, 當該中官, 施以不敍之典。"


  • 【태백산사고본】 77책 114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45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