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례궁에 거동하여 《대학연의》를 강하고, 정관을 불러 정사를 행하다
임금이 황화방(皇華坊)·명례궁(明禮宮)에 거둥하였다. 명례궁은 곧 인조(仁祖)가 계해년119) 에 즉위한 곳으로, 본래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었다. 임금이 《실록(實錄)》을 상고하도록 명하여 이를 알고 마침내 거둥하여 살펴본 것인데, ‘양조에서 모두 거둥하셨다[兩朝皆御]’는 네 글자와 ‘계해년에 즉위하신 당[癸亥卽阼堂]’이라는 다섯 글자를 친히 쓰고, 게판(揭板)하도록 명하였으니, 대개 선묘(宣廟)께서도 또한 임진년120) 이후에 이 궁에서 거처했었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당(堂)에서 내려가 북면(北面)하여 전배(展拜)하고, 내당(內堂)에 들어가서 유신을 불러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하였다. 궁 옆에 사는 백성들 가운데 나이 70세가 넘은 사람들을 불러 쌀과 비단을 내려 주었다. 또 정관(政官)을 불러 정사(政事)를 행하며 말하기를,
"오늘은 마땅히 계해년을 뒤좇아 생각하여 이 당에서 친히 정사를 행하겠다."
하고, 마침내 모두 계해년 공신(功臣)의 자손들로 비의(備擬)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이미 하비(下批)한 다음 궁문 밖에서 아울러 사은(謝恩)하게 하였는데, 이날 제배(除拜)된 자가 14인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76책 11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36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上幸皇華坊 明禮宮。 宮卽仁祖癸亥卽位之所, 本名慶運宮。 上命考實錄而知之, 遂臨幸看審, 親書 ‘兩朝皆御’ 四字, 及‘癸亥卽阼堂’五字, 命揭板, 蓋宣廟亦於壬辰後, 御此宮故也。 上, 下堂北面展拜, 入內堂, 召儒臣, 講《大學衍義》。 召宮傍居民年躋七十者, 賜米帛。 又召政官行政曰: "今日當追癸亥, 親政于此堂。" 遂命皆以癸亥功臣子孫備擬。 旣下批, 幷令謝恩於宮門外, 是日除拜者十四人。
- 【태백산사고본】 76책 11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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