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12권, 영조 45년 5월 26일 정미 1번째기사
1769년 청 건륭(乾隆) 34년
기로과의 사은하는 자리에 친림하고, 연화방의 기민을 소견하다
임금이 숭정전(崇政殿)의 월대(月臺)에 나아갔다. 기로과(耆老科)의 사은(謝恩)하는 자리에 친림(親臨)하여 칠언시(七言詩) 1구를 짓고, 문과 5인으로 하여금 화답(和答)하여 올리게 한 다음 내전으로 돌아왔다. 약방에서 입진하였다.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임금이 또 덕유당(德游堂)에 나아가 연화방(蓮花坊)의 기민(耆民)을 소견하여 쌀을 차등 있게 내려 주고, 말하기를,
"국초(國初)에 도읍을 세웠을 때 연화방에 머무셨는데, 이것은 감구(感舊)하는 뜻이다."
하였다. 대사간 정운유(鄭運維)가 전계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2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정론-간쟁(諫諍) / 어문학-문학(文學)
○丁未/上御崇政殿月臺, 親臨耆老科謝恩, 御製七言詩一句, 令文科五人賡進, 還內。 藥房入診。 引見大臣備堂。 上又御德游堂, 召見蓮花坊耆民, 賜米有差曰: "國初建都時, 留御蓮花坊, 此感舊之意也。" 大司諫鄭運維申前啓, 不允。
-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2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정론-간쟁(諫諍)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