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한이 어필의 반사를 만드는 일에 대해 아뢰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引見)하였다.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이 말하기를,
"신 등이 어필(御筆)의 반사(頒賜)를 받들게 되니, 황송하고 감사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모아 받들어 보니, 필력(筆力)이 소년 때와 같으시므로 서로 흠탄(欽歎)하였습니다."
하였다. 홍봉한이 또 말하기를,
"신은 들어와서는 안되는데 들어왔으니, 진실로 황공합니다. 일전에 개정(改正)을 시행하지 말라는 요청은 진실로 나라를 위하는 고심에서 나온 것입니다만, 이는 옛 법이 아니고 바로 근래에 창출한 것이기 때문에 진달한 것인데, 공의(公議)가 이와 같으니 지극히 황송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한번 이조 판서가 되자 문득 개정하는 탄핵을 만났으니, 어렵다. 욕을 당한 자가 진실로 많으나 어찌 묵상(墨商)의 욕과 같은 것이 있겠는가? 임정원(林鼎遠)의 상소는 괴이하다. 한 판부사(韓判府事)507) 가 완백(完伯)508) 이 되었을 때에 박성원(朴盛源)이 그 아버지의 전최(殿最)의 혐의로써 복물(卜物)509) 을 수색해 검사하였으니, 역시 괴이하다."
하였다. 홍봉한이 말하기를,
"이조 판서가 비록 신의 친사돈이지만 이번 도목 정사(都目政事)는 잘 하였습니다."
하였다. 홍봉한이 ‘내삼청(內三廳)510) 의 사만(仕滿)한 사람을 이조(吏曹)에서 미처 옮기기 전에 병조(兵曹)에서 먼저 대(代)를 내었고, 또 영장(營將)과 중군(中軍)을 옮긴 것이 너무 많으며 또한 삭(朔)에 준(準)하지 아니한 것이 있다.’ 하여 병조 판서를 중추(重推)하도록 청하니, 이를 윤허하였다. 홍봉한이 또 ‘사만(仕滿)한 사람을 미처 옮기지 아니하였는데, 먼저 대(代)를 냈다.’ 하여 이조 판서를 중추(重推)하도록 청하니, 윤허하였다. 홍봉한이 말하기를,
"단묘조(端廟朝)511) 의 세 대신(大臣)을 복관(復官)한 뒤에, 정분(鄭苯)의 자손 가운데 확실한 자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요즘 듣건대 장흥(長興) 정성(鄭姓) 사람이 마가(馬哥)와 송사(訟事)함으로 인하여 관에서 정성 사람의 선대(先代)의 묘(墓)를 파 보니 지석(誌石) 두 조각을 찾았는데, 바로 정광로(鄭光露)의 묘이고 정광로는 바로 정분의 아들입니다. 대저 정광로가 당시의 일이 어려움을 알고 거짓으로 미쳐서 자취를 숨겼는데, 그가 죽음에 이르러 그 아들이 비록 지석(誌石)을 묻었으나 유계(遺戒)로 인하여 그 내력을 비밀로 하였기 때문에 손자 이후로부터는 누구의 자손인지를 아득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수백년 뒤에 비로소 옛 정승의 혈손(血孫)임을 알았으니, 조가(朝家)에서 표이(表異)의 거조가 있어야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기이한 일이다. 결원을 기다려서 조용(調用)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5책 111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13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註 507]한 판부사(韓判府事) : 한익모(韓翼謨).
- [註 508]
완백(完伯) : 전라 감사.- [註 509]
복물(卜物) : 마소에 실은 갖가지 물품.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 공물(貢物)로 갖가지 물품을 마소에 싣고 가므로, 특별히 중국에 보내는 선물을 일컬기도 함.- [註 510]
내삼청(內三廳) : 내금위(內禁衛)·겸사복(兼司僕)·우림위(羽林衛).- [註 511]
단묘조(端廟朝) : 단종조(端宗朝).○上引見大臣備堂。 領議政洪鳳漢曰: "臣等獲承御筆頒賜, 不勝惶感。 而聚首奉玩, 筆力如少年時, 相與欽歎矣。" 鳳漢又曰: "臣不可入而入來, 誠惶恐矣。 日前改正勿施之請, 實出爲國苦心, 此非古法, 乃是近者創出者, 故有所陳達, 而公議如此, 極爲惶悚矣。" 上曰: "一爲吏判, 輒遭改正難矣。 逢辱者固多, 而豈有如墨商之辱乎? 林鼎遠之疏怪矣。 韓判府爲完伯時, 朴盛源以其父殿最之嫌, 搜檢卜物, 亦怪矣。" 鳳漢曰: "吏判雖臣親査, 而今番都政, 善爲之矣。" 鳳漢以內三廳仕滿人, 吏曹未及遷轉之前, 兵曹經先出代, 且營將中軍移遷太多, 而亦有未準朔者, 請兵判重推, 允之。 鳳漢又以仕滿人員, 未及移遷, 經先出代, 請吏判重推, 允之。 鳳漢曰: " 端廟朝三大臣復丈官後, 遵鄭苯子孫, 尙未得眞的者矣。 近聞長興 鄭姓人與馬哥相訟, 自官掘見鄭姓人先代墓, 得誌石二片, 卽鄭光露之墓, 而光露卽苯之子也。 蓋光露預知時事之難, 佯狂匿跡, 及其歿也, 其子雖埋誌, 而因其遺戒, 秘其來歷, 自孫以後, 芒然不知爲誰某之後。 今於數百年之後, 始知爲古相之血孫, 自朝家宜有表異之擧矣。" 上曰: "其涉奇異。 待闕調用。"
- 【태백산사고본】 75책 111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13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註 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