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대에서 《숙흥야매잠》을 강하고 《소학지남》을 윤독하다
야대(夜對)를 행하였는데,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강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태학의 생도들에게 내가 십잠(十箴)을 권하였는데, 비록 게으르고 방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책을 펴면 조금 공경의 마음이 생길 것이지만 책을 덮으면 다시 처음과 같이 될 것이니,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공자께서 자리에 앉아 계시고 안자(顔子)와 증자(曾子)가 앞뒤로 앉아 있는 기상을 상상해 보면 자연히 공경의 마음이 생길 것이다."
하였다. 또 《소학지남(小學指南)》을 가지고 들어오라고 명하여 윤독(輪讀)하게 하고 나서 하교하기를,
"진 서산(眞西山)105) 의 《대학연의(大學衍義)》에 ‘야대(夜對)가 낮에 물어보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다. 그리고 《옥서일기(玉署日記)》로 보건대, 경연만 열고 야대를 정지하였을 경우에는 ‘경연만 열고 야대를 정지하였다.’고 쓰고, 경연을 정지하고 야대를 행하였을 경우 ‘경연을 정지하고 야대를 행하였다.’고 쓰지 않는 날이 없었다. 아! 왕위를 이어받은 뒤로 경연을 열었지만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 있는 것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옥서일기》를 보건대, 어떻게 감히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아! 동위(銅闈)106) 에 있을 때 정월 초하룻날 요화당(瑤華堂)에서 야대를 하였었다. 그때 춘방(春坊)은 고 상신 송인명(宋寅明)과 고 참판 이광세(李匡世)였었고, 계방(桂坊)은 서종진(徐宗鎭)이었다. 그때 고 상신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보통 이날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소일을 하는데, 지금 야대를 행한다.’고 하면서 더욱 나를 권면하였다. 그뒤 호서의 방백으로 갔을 때에도 다시 정월 초하룻날 야대한 이야기를 외우면서 나를 권면하였다. 어찌 그의 상소만 일기에 기록되어 있겠는가?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아! 지금은 눈이 어두어졌는데, 옛날의 일기에 감동되어 자정전(資政殿)에서 법강(法講)을 하였다. 그날 《소학(小學)》의 제사(題辭)만 외우고 말았으니, 이제부터 중지하였다는 말만 기록하고 나는 고요히 요양하느라 나날을 보내게 되었는데, 아! 더구나 이 해이겠는가? 고요히 누워서 생각해 보니, 경연은 비록 열 수 없으나, 야대를 어찌 한 번도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대는 보통의 자세로 앉는데에도 이 역시 어려워서 갓을 쓰고 의자에 기대어 하고 있다. 이 뜻은 나의 올해 마음으로 지금 하지 않는다면 더욱 늙어질 것인데, 무엇을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수년 이래로 처음 행한 것이다. 그 강(講)은 무엇을 하는가 하면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이니, 이 뜻 역시 깊은 것이다. 평상시 문답할 때에는 누워서 듣는 것에 불과하였는데, 오늘 밤에 유신(儒臣)들과 토론하니, 지난날처럼 느껴진다. 어찌 75세가 되어 이럴 줄을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강(講)이 끝났으나, 남은 뜻을 잊지 못하여 지금 《소학지남(小學指南)》을 가져다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즉 《소학(小學)》이다. 내 나이 13세에 읽었는데, 그 해가 돌아왔다. 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다시 강(講)한 후의 사체(事體)는 다른데 어찌 노쇠한 것을 거리끼겠는가? 《논어(論語)》·《맹자(孟子)》·《시경(詩經)》·《서경(書經)》을 차례로 거듭 강하였다. 아! 80을 바라보면서 《논어》·《맹자》를 거듭 강하는 것만도 기이한 일인데, 더구나 《시경》·《서경》이겠는가? 더러는 《희경(羲經)》을 강하라고 권하기도 하는데, 스스로 기력을 헤아려 보건대, 정말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소학》을 강한 해가 돌아왔으므로 박약 복초(博約復初)107) 의 뜻으로 《소학》을 강하고 싶었으나, 일이 마음과 같이 되지 않아 입교편(立敎篇)만 겨우 강하였다. 아! 몇 년이 지난 뒤에 보면 관리(館吏)가 오늘을 ‘경연은 정지하고 야대를 행하였다.’고 써 놓았을 것이다. 40년 동안 학문을 강하고 남은 뜻을 오늘 밤에 조금 펼 수 있었다. 시각이 이미 깊었으므로 이처럼 불러서 쓰게 하였다. 무릇 해동(海東)의 어진 사대부들은 내가 75세가 되어 올해에 마음쓰는 뜻을 감동하여, 이 하교를 몇 줄의 문구(文具)로 여기지 말라. 그러면 어찌 나의 마음에만 부응하는 것이겠는가? 어찌 세상에 도움이 없겠는가? 힘쓰고 힘쓸지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4책 110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28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註 105]진 서산(眞西山) :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
- [註 106]
동위(銅闈) : 동궁을 지칭.- [註 107]
박약 복초(博約復初) : 박약은 박아이문 약아이례(博我以文 約我以禮)의 준말인데, 고서(古書)를 널리 읽고 나서 예로 검속하는 뜻이고, 복초는 이러한 공부를 하여 처음에 타고난 천성을 회복시킨다는 뜻임.○行夜對, 講《夙夜箴》。 上曰: "太學諸生, 予勸以十箴, 雖怠惰放肆之人, 開卷則少有起敬之心, 而掩之則乃復如初, 此難矣。 夫子在座, 顔 曾後先, 想像其氣像, 自有欽敬之心。" 又命持入《小學指南》, 輪讀訖, 敎曰: "眞西山 《大學衍義》云, 夜對勝於晝訪。 以《玉署日記》觀之, 只經筵而停夜對, 則書曰只經筵而停夜對, 停經筵而行夜對, 則書曰停經筵而行夜對, 無日不書。 噫! 嗣服後講筵, 不過書自我自。 而然見《玉署日記》, 何敢忽也? 噫! 在銅闈時上元日, 瑤華堂行夜對。 其時春坊卽故相臣宋寅明, 故參判李匡世, 桂坊卽徐宗鎭也。 伊時故相云, 凡人於此日, 詩酒消日, 而以今行夜對, 益勉于予。 伊後湖西伯時, 復誦上元日夜對勉予。 奚特其章之載日記? 尙今思焉。 噫! 今則視〔昏〕 , 興感於昔年日記, 行法講于資政殿。 其日只背誦《小學》題辭而止, 從此以後, 只錄其停, 予則靜攝度日, 嗚呼! 況此年乎? 靜臥思之, 經筵雖不能爲, 夜對豈不一行乎? 蹶然而起。 夜對則平坐, 而坐亦難, 着笠坐椅而行焉。 此意以予今年之心, 及今不爲, 益衰何爲? 此正數年來初行者。 其講何? 卽《夙夜箴》, 意亦深也。 常時問答, 不過臥而聽之, 今夜與儒臣討論, 怳若前日。 亦豈七十五歲攸料者? 講畢, 餘意惓惓, 今取讀《小學指南》, 此書卽《小學》。 予年十三乃讀, 亦回其甲。 嗚呼! 萬萬料表。 復講後事體異焉, 奚憚其衰? 《論》 《孟》 《詩》 《書》次第重講。 而吁嗟! 望八《論》 《孟》重講, 已是異事, 況詩 書乎? 或勸《羲經》, 而自量其氣, 誠難誠難。 且講《小學》之回甲, 以博約復初之意, 欲講《小學》, 事與心違, 《立敎篇》僅講。 噫! 幾年之後, 館吏今日當書停經筵行夜對。 四十載講學餘意, 今夜小伸。 更皷已深, 若是呼寫。 凡諸海東賢士大夫, 感予七十五歲, 爲今年用心之意, 勿以此敎爲數行之文具。 則豈徙副予心? 豈不有助於世乎? 勖哉勉哉。"
- 【태백산사고본】 74책 110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28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註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