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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0권, 영조 44년 1월 5일 갑오 3번째기사 1768년 청 건륭(乾隆) 33년

헌납 강지환이 장악, 왕세손의 학업, 임금의 언사, 채제공의 제학 임무 등에 대해 상소하다

헌납 강지환(姜趾煥)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올해 장악(藏樂)을 명하신 것은 사실 조상을 추모하는 우리 성상의 지극한 효성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인정은 비록 끝이 없으나 예절은 한계가 있습니다만, 이번 장악하신 일은 예경(禮經)에도 거론되지 않았고 열성(列聖)께서도 행하지 않으셨으니, 이는 정말 예절에 없는 것으로 마땅함에 지나침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새봄에 거둥하실 때에도 종소리와 북소리 그리고 음악의 연주를 들을 수 없어서 〈임금께서 건강하신 것을 보고 기뻐하는〉 백성들의 뜻을 위로할 수 없으니, 삼가 바라건대 장악(藏樂)의 명을 빨리 거두어 온 나라 사람들의 바람에 부응해 주소서.

삼가 보건대 우리 왕세손 저하께서는 슬기로운 자질을 타고나 학업이 날마다 진취되어 가고 있으니, 진실로 우리 동방의 억만년 무궁한 근본입니다. 그러나 다만 강관(講官)을 설치한 것은 장차 슬기로운 덕을 성취시킬 책임을 맡기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형식적인 겉치레만 하고 인원이나 갖추어서 아침에 제숙하였다가 저녁에 다른 곳으로 옮겨 가고 있어서 강론하는 공부가 귀취(歸趣)를 다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인도하는 방법에 있어서 어떻게 개발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조(銓曹)에 특별히 주의시켜 적합한 사람을 선발하여 오랫동안 임무를 맡기도록 하소서. 그리고 궁료(宮僚)들을 만나는 시간은 적고 부시(婦寺)들과 가까이 지내는 때가 많으니, 일폭 십한(一曝十寒)011) 의 염려를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서경(書經)》에, ‘가까이 시종을 드는 신하가 바르면 그 임금도 바르게 된다.’고 하였으니, 비록 환시(宦侍)같은 부류들이라도 반드시 근신한 노성자(老成者)를 뽑아 심부름을 시키게 한다면 틈을 엿보아 농간을 부리는 우환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더욱 유념해 주소서.

임금의 말씀은 마땅히 신중히 하셔야 하는데, 삼가 들으매 전후 연석(筵席)에서 중신과 재신을 ‘묵상(墨商)012) ’이라 이르시고 ‘사두(篩頭)013) ’라고 이르셨다 하니, 두 신하로 하여금 정말로 용렬하고 비루하다고 여겼으면 재상의 자리에다 발탁한 것은 종핵(綜核)하는 정사가 아닐 것이고, 이미 그들을 여기까지 끌어올렸으면 또한 예로 대우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지금 연석에 임하시어 호칭을 부를 때는 전부 속된 말을 쓰고 계시니, 그들을 배우로 기르시고 노복으로 보시는 의도가 말씀 속에서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저 두 신하들이야 물론 돌아볼 것도 없지만 사륜(絲綸)에 끼친 누가 적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시험삼아 지난날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득복(李得福)이 대궐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데, ‘즉시 나와 사은 숙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벌을 내려 파직하라고 하셨고, 이휘중(李徽中)이 이미 향반(享班)에 나아갔으나 ‘관료들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한 하교까지 받았는데, 비록 지나간 일이기는 하나 형벌의 정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앞으로 벌을 시행하실 때에는 더욱 신중히 살펴서 다시금 중도를 지나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인심이 날로 야박해져 풍속이 불미스러운데, 이미(李瀰)·이규위(李奎緯)의 일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이규위가 경연에서 아뢴 것은 그것이 떠도는 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고, 이미가 전후로 올린 상소에는 근거없이 날조하여 끌어댄 것이라 하였으니, 곧 의심스러운 안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규위의 말이 옳다면 이미의 변명은 진실로 속인 것을 면하기 어렵고, 이미의 말이 옳다면 이규위가 증거로 끌어댄 것 또한 어찌 너무나 허황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한번 명확히 밝혀 그에 합당한 법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예조 참판 채제공(蔡濟恭)은 일찍부터 성균관에서 유학하여 문예(文藝)는 조금 있으나, 집에서 하는 행실은 취할 점이 전혀 없습니다. 그가 상을 당했을 때에 생도들을 모아 놓고 여막(廬幕)의 곁에서 글솜씨를 시험하면서 이를 ‘사백일장(私白日場)’이라고 명칭을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시험지를 받아들여 축(軸)을 만들기를 한결같이 과거의 규례에 의하여 하고 주필(朱筆)로 등급을 매길 땐 문득 고시관(考試官)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또 즐겁게 음식을 들면서 연회의 집합소처럼 상호 과장하고 칭찬해 주면서 훌륭한 일인 양 여기었으므로 보고 듣는 사람들마다 너나없이 해괴하게 여기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효자의 마음이라면 이러한 일을 편안히 여기겠습니까? 이는 ‘상(喪) 중에는 상사(喪事)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는 고인의 의리가 아니니, 풍속을 손상시키고 조정 관료들에게 수치를 끼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청선(淸選)의 자리를 줄 수 없습니다. 신은 채제공의 제학 임무를 먼저 개정하고 이어서 사판(仕版)에서 삭제하는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였다. 상소가 들어가자 동부승지 서명선(徐命善)에게 명하여 읽게 하였는데, 묵상(墨商)·사두(篩頭)의 말에 이르자, 임금이 말하기를,

"사두는 이득종(李得宗) 같은데, 묵상은 중신 중에 얼굴이 검은 자가 있는가?"

하니, 서명선이 말하기를,

"중신 중에 얼굴이 검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는데, 바로 조명정(趙明鼎)이다. 묵장(墨匠)이라고 하면 말뜻이 전부 드러나기 때문에 바꾸어서 묵상이라고 한 것이다. 겉으로는 비록 경계하라는 것 같지마는 사실은 용렬한 곳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하고, 전교를 쓰라고 명하기를,

"채제공(蔡濟恭)의 일은, 이 사람이 벼슬길에 오른 초기부터 그 사람 됨됨이를 익히 알고 있는데,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강지환(姜趾煥)의 이 참소한 것과 비근한 점이 있겠으며, 강지환이 거상(居喪)할 때에도 그 역시 백일장을 열어 시험지를 받아들인 일이 있었는가? 그의 임금에게 만고에도 없는 묵상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음은 너무나 심하게 무상하니, 관례에 따라 처리해서는 안되겠다. 사판(仕版)에서 삭제하는 법을, 저에 대하여 스스로 제 말을 하였다고 할 수 있으니 강지환을 영구히 사판에서 삭제한 다음 시골로 내쫓아 벼슬아치들 사이에 끼어 있지 못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4책 110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272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예술-음악(音樂)

  • [註 011]
    일폭 십한(一曝十寒) : 하루 햇볕을 쬐고 열흘 동안 차게 한다는 것으로 이는 하루 일을 부지런히 하고 열흘간 게으름을 피우는 것에 비유한 것임.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비록 세상에서 아주 잘 자라는 물체가 있더라도 하루 볕을 쬐고 열흘 동안 차게 할 경우 살 수가 없을 것이다."고 하였음.
  • [註 012]
    묵상(墨商) : 먹 장사꾼.
  • [註 013]
    사두(篩頭) : 체 장사꾼.

○獻納姜趾煥陳疏, 略曰: "今歲藏樂之命, 寔由於我聖上追遠之至孝。 第念情雖無窮, 禮則有限。 今此藏樂之擧, 乃是禮經之所不論, 列聖之所不行, 此固無於禮之禮, 而不免爲過當之歸也。 新春動駕之日, 亦不聞〔鍾〕 皷之聲, 管籥之音, 無以慰吾民欣欣之意, 伏願亟收藏樂之命, 以副擧國之望焉。 竊伏見我王世孫邸下, 睿質天挺, 學業日就, 誠我東方億萬年無疆之本也。 但設置講官, 將以畀睿德成就之責也。 應文備數, 朝〔除〕 夕遷, 講論之功, 將不得盡其歸趣, 導迪之術, 何由而望其開發乎? 伏願另飭銓曹, 得其人而久其任焉。 宮僚引接之時少, 而婦寺昵近之時多, 竊不勝一曝十寒之慮。 《書》曰: ‘僕臣正厥后克正’, 雖在宦寺僕御之流, 必擇老成謹飭者, 以備使令, 則庶無投間抵隙之患。 伏願益加聖念焉。 人君辭令, 在所當愼, 而伏聞前後筵敎, 以重臣宰臣, 或謂之墨商, 或謂之篩頭, 使兩臣眞箇庸鄙, 則擢置卿宰, 已非綜核之政, 旣已推遷至此, 則亦宜待之有禮。 而今乃臨筵稱號, 全用俚談, 俳畜奴視之意, 溢於辭旨之間。 惟彼兩臣, 固不足恤, 貽累絲綸, 竊恐非細。 試以向來事言之, 李得福來待闕中, 而以不卽出肅, 遽命譴罷, 李徽中旣赴享班, 而以僚員不進, 至被嚴敎, 事雖旣往, 有乖刑政。 伏願自今施罰之際, 益加審愼, 無復有過中之擧也。 人心日渝, 風習不美, 至於李瀰李奎緯事而極矣。 奎緯之筵席奏對, 證其傳說之分明, 之前後供疏, 謂以白地之誣援者, 便成疑案。 奎緯言是, 則之分疏固難免誣罔之歸。 言是則奎緯之證援, 亦豈非虛慌之甚乎? 臣謂一番明覈, 施以當典, 斷不可已也。 禮曹參判蔡濟恭, 早遊泮庠, 薄有文藝, 而居家行檢, 全無可取。 當其持〔縗〕 之日, 募取諸生, 課藝廬側, 名之曰私白日場。 捧券作軸, 一依科〔規〕 , 朱筆等題, 便作考官。 況又飮食團欒, 殆同宴集, 互相誇詡, 以爲勝事, 聽聞所及, 莫不怪駭。 未知孝子之心, 其能安於此乎? 殊非古人非喪不言之義, 其傷風敗俗, 貽羞朝紳, 非細故也。 此等之人, 不可畀以淸選。 臣謂蔡濟恭提學之任, 爲先改正, 仍施削版之典也。" 疏入命同副承旨徐命善讀奏, 至墨商篩頭之語, 上曰: "篩頭似是李得宗, 而墨商則重臣中有黑面者乎?" 命善曰: "重臣中無面黑者矣。" 上曰: "今始覺之, 乃趙明鼎也。 謂之墨匠, 則語意畢露, 故幻謂之墨商。 外面則雖似勉戒, 實則驅之於庸劣之科矣。" 命書傳敎曰: "蔡濟恭事, 此人自釋褐初, 熟知其人, 豈一毫彷彿於姜趾煥之此讒者, 趾煥枕苫之時, 其亦有白日場捧券之事乎? 於其君, 用萬古所無墨商之說, 萬萬無狀, 不可循例處之。 削版之典, 於渠可謂自道, 姜趾煥永刊仕版, 放逐鄕里, 勿齒搢紳。"


  • 【태백산사고본】 74책 110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272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예술-음악(音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