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105권, 영조 41년 4월 14일 기미 4번째기사
1765년 청 건륭(乾隆) 30년
학림군 이육이 시조인 사공공의 묘소 봉축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종신(宗臣) 학림군(鶴林君) 이육(李焴)이 상소하기를,
"아조(我朝)의 시조(始祖) 사공공(司空公)의 묘소[衣履之藏]가 전주의 건지산(乾止山)에 있으니, 청컨대 봉축(封築)을 더하고 따라서 숭봉(崇奉)하여 추원 보본(追遠報本)하는 정성을 깃들게 하고 그윽이 동지(冬至)에 조상께 제사지내는 뜻에 부합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숨김없이 말한 것으로 가상히 여겼으나, 다만 유전(流傳)한 내용이 상세하지 못한데 원묘(原廟)로 하는 것은 비례(非禮)라고 하여 윤허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경묘(肇慶廟)를 설치한 것은 이에서 조짐(兆朕)이 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71책 105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9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궁관(宮官)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