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의 장의를 4조에 현관이 없는 자로 차출하라는 명에 반대한 이헌경을 체직시키다
임금이 주강과 석강을 행하였다. 집의 이헌경(李獻慶)이 《시경(詩經)》의 인재를 육성하는 즐거움[菁莪樂育]의 뜻을 인용하여, 오래 살고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을 힘쓰도록 청한 뒤에 이어서 말하기를,
"태학의 장의(掌議)를 4조(四祖)046) 에 현관(顯官)이 없는 자로서 차출(差出)하는 것은 선비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을 골라 인재를 양성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앞서 내리신 명령을 거두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상(商)나라 이윤(伊尹)과 주(周)나라 여망(呂望) 역시 어찌 〈4조에〉 현관이 있었던가? 옛날의 현량(賢良)들은 암혈(巖穴)에서부터 발신(發身)하였는데, 오늘날 사람을 쓰는 것은 다만 도성[輦轂]에만 있으니, 어찌 그런 이치가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전랑(銓郞)이 한림(翰林)을 선발하는 데에서 경알(傾軋)047) 이 일어나고 사마시(司馬試)에 장원(壯元)을 뽑는데도 역시 비봉(秘封)을 엿본다. 내 비록 부덕(否德)하지마는, 어찌 잘못된 습관을 따르겠는가? 4조에 아무리 현관이 없더라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명신(名臣)이고 철보(哲輔)였다. 서울의 사자(士子)들은 입으로 독서(讀書)를 하지 않는데 시골의 청금(靑衿)048) 들은 다만 그 재주만 품고 〈펴지 못하니,〉 이는 바로 옛사람이 옥토(沃土)와 척토(瘠土)에 비유한 것이다. 삼대(三代)049) 의 손익(損益)도 역시 그 형세를 따른 것인데, 이미 그 폐단을 알았으면 어찌 고치지 않겠느냐? 헌신(憲臣)의 이 청(請)이 있는 것은 나라를 위한 것인가, 경화(京華)의 사자(士子)를 위한 것인가? 만일 이와 같이 한다면 전랑(銓郞)이 한림을 천거하는 것도 장차 옛날대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하고, 계속 엄한 교지를 내려 꾸짖으니, 이헌경이 황공하여 인피(引避)하자 체직시키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1책 105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9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註 046]4조(四祖) : 부(父)·조부(祖父)·증조부(曾祖父)·외조부(外祖父).
- [註 047]
○上行晝夕講。 執義李獻慶引詩之菁莪樂育之義, 仰勉壽考作人之方, 仍曰: "太學掌議, 以四祖無顯官者差出, 非所以擇士望作人才之道也。 宜還寢前命也。" 上曰: "商之伊尹, 周之呂望, 亦豈有顯官也? 昔之賢良, 起自巖穴, 今之用人, 只在輦轂, 豈其理也? 以此之故, 銓郞翰選, 作爲傾軋, 司馬壯元, 亦窺秘封。 予雖否德, 豈循謬習? 四祖雖無顯官, 溯其本則亦名臣哲輔也。 京之士子, 口不讀書, 鄕之靑衿, 徒抱其才, 正古人沃土瘠土之喩者。 三代損益, 亦因其勢, 旣知其弊, 何不規正? 憲臣之有此請爲國乎, 爲京華士子乎? 若然則銓郞翰薦, 亦將復舊乎?" 多下嚴旨責之, 獻慶惶恐引避, 命遞之。
- 【태백산사고본】 71책 105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9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註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