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을 위해 《표의록》을 짓다
임금이 친히 《표의록(表義錄)》을 지었는데, 영빈(暎嬪)의 일을 서술한 것이었다. 《표의록》이 완성되자 영의정 홍봉한을 불러 그로 하여금 보게 하고 말하기를,
"이 글이 도움이 없지는 않겠는가?"
하니, 홍봉한이 말하기를,
"의리가 뚜렷이 드러나 한결같이 공평한 천리(天理)에서 나왔으므로 그 도움이 크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늘날 신하들이 이 의리를 모르고 이 마음을 모르니,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득이 이 글을 지어 만세에 보이려고 한 것인데, 참으로 털끝만큼이라도 틀릴 경우 의리가 어둡고 막힐 것이다."
하고, 이어서 간행하여 사고(史庫)에 보관하라고 명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수은(垂恩) 두 글자는 나에게는 깊은 뜻이 있다. 후일 아첨하는 신하가 다른 호(號)로 고치려고 한다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겠는가? 그런 자는 해동(海東)의 신하가 아니다."
하였다. 영빈의 묘소를 서교(西郊)의 연희궁(延禧宮)으로 정하라고 명한 다음 하교 하기를,
"땅은 양주 땅이지마는 도성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우니, 모든 물건의 제공을 경기 고을에 부담시키지 말고 임신년234) 의 관례에 따라 경사(京司)에서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0책 104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178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왕실-국왕(國王) / 역사-편사(編史) / 출판-서책(書冊) / 출판-인쇄(印刷)
- [註 234]임신년 : 1752 영조 28년.
○壬子/上親製《表義錄》, 蓋敍暎嬪事也。 錄旣成, 召領議政洪鳳漢, 使視之曰: "此文, 不爲無助乎?" 鳳漢曰: "義理昭著, 一出於天理之公, 其有助大矣。" 上曰: "今日臣子, 不識此義, 不知此心, 則將何以爲國? 不得已作此文字, 垂示萬世, 苟或毫髮有差, 義理晦塞矣。" 仍命刊印, 藏于史庫。 又敎曰: "垂恩二字, 予有深意。 他日諂諛之臣, 欲改以他號, 則其將置予于何地? 此非海東臣子也。" 命定暎嬪墓于西郊之延禧宮, 敎曰: "地雖楊州, 距都城卽尺咫, 凡諸支供, 勿煩圻邑, 依壬申例, 自京司擧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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