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영조실록104권, 영조 40년 7월 25일 을해 1번째기사 1764년 청 건륭(乾隆) 29년

여러 신하들이 직언을 하다

임금이 연화문(延和門)에 나아가 조참을 행하였다. 전정(殿庭)에 나온 신료들 중에 재이를 그치게 하는 계책에 대해 건의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오위 장(五衛將) 안광복(安光福)은 마병(馬兵)이 피폐해진 폐단에 대해 말하였고, 상례(相禮) 강시현(姜始顯)은 성상의 몸을 보존하고 아끼는 것에 대한 말을 진언하였으며, 전적 박동일(朴東一)은 언로를 여는 요점에 대해 말하였고, 사복 첨정 이민보(李敏輔)는 목장의 말을 변통해야 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기타 음관(蔭官) 중 직무로 아뢴 것들이 모두 잗달고 번거로웠다. 정언 구상이 나아가 아뢰기를,

"법을 제정하는 도리는 반드시 신중히 하여야 하며 법을 시행하는 요점은 믿음을 보이는 것이 귀중합니다. 《대전(大典)》이나 《속전(續典)》의 법은 절목이 상세하게 갖추어져 있어 이에 의거하여 시행할 수 있습니다만, 뒤에 변경한 것도 많은데, 비록 목전에는 효과가 있을 듯하나, 반드시 끝에 가서는 폐단이 쉽게 생길 것입니다. 가령 새로 제정한 것이 옛날의 법보다 낫다고 하더라도 자주 변경하는 것은 신중히 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늘 법령 중 비록 세세한 절목이라도 일체 두 법전에 따라 시행할 것이며, 옛 법전에 없어서 새로 제정한 것을 부득이 처음으로 시행할 경우에는 반드시 여러 사람에게 하문하여 의견이 모두 같은 뒤에 시행하소서."

하니, 임금이 옳다고 하였다. 구상의 뜻은 대체로 금주의 법을 무상하게 자주 변경하는 점을 지적해서 말한 것이었다. 구상이 또 과거에서 강(講)을 하는 폐단에 대해 말하기를,

"옛날에 사람을 취할 때는 오로지 과거의 제도에 의지하여 대비(大比)·증광시(增廣試)·별시(別試) 밖에 없었는데 취하는 방법은 매우 정밀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래의 제도에 이르러서는 잦은 변경을 거쳐 왔습니다. 〈경서를〉 강하는 규식으로 볼 때 연소하여 강을 잘 하는 자가 꼭 문장에 능한 것이 아니며, 연로하여 문장에 능한 자도 꼭 강에 능한 것이 아니니, 실로 인재를 얻는 도리에 무익합니다. 그러므로 면시법(面試法)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성상께서 차마 박절하게 하지 못하여 겨우 한두 번 시행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시행함에 엄하게 하지 않으면 도리어 폐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뜻에는 일체 두 법전의 인재를 취하는 법에 따라서 하되, 그 제도를 엄중하게 하여 인재를 뽑는 것이 좋을 것으로 여깁니다."

하니, 임금이 법제를 경솔하게 논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직을 체차하였다. 임금이 오위 장 신집(申鏶)이 나이든 음관(蔭官)으로서 앞서 당시 폐단에 대해 상소한 것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말을 하사하고, 조참 때에 진언한 자들의 말이 비록 사리에 맞지는 않았으나 곽외(郭隗)200) 부터 시작한다는 뜻으로 모두 우직(右職)201) 에 조용(調用)하여 직간하는 사람을 권장하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0책 104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73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법제(法制) / 교통-마정(馬政)

  • [註 200]
    곽외(郭隗) : 춘추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현인(賢人). 연나라 소왕(昭王)이 현명한 이를 얻고자 하여 곽외에게 "훌륭한 사람을 얻어 같이 다스리면서 선왕(先王)이 제(齊)나라에 당한 치욕을 씻고자 하니, 선생이 그런 사람을 알려 주시오." 하자, 곽외가 말하기를, "옛날 어떤 임금이 내시에게 천금을 주면서 천리마(千里馬)를 구해 오게 했더니, 그가 죽은 말의 뼈를 5백 금이나 주고 사서 돌아왔으므로 임금이 화를 내자, 그가 말하기를, ‘죽은 말도 사들이는데, 더구나 산 것이겠습니까? 천리마가 곧 올 것입니다.’ 하였는데, 과연 1년이 안되어 세 마리나 왔다고 합니다. 왕께서 꼭 현명한 사람을 구하고자 하시면 저부터 쓰실 경우 저보다 더 현명한 자가 어찌 천리를 멀다 하여 오지 않겠습니까?" 하므로, 소왕이 곽외를 등용하여 스승으로 섬겼는데, 그후부터 훌륭한 사람들이 연나라를 찾아왔다는 고사.
  • [註 201]
    우직(右職) : 현 직위보다 좀 나은 자리.

○乙亥/上御延和門, 行朝參。 庭僚無一人進弭災策者, 五衛將安光福, 陳馬兵疲殘之弊, 相禮姜始顯進聖躬保嗇之說, 典籍朴東一, 陳開言路之要, 司僕僉正李敏輔, 進牧場馬變通之策, 其餘蔭官之以職掌奏者, 皆零瑣煩屑。 正言具庠進曰: "設法之道, 必也難愼, 行法之要, 貴在示信。 《大典》《續典》之法, 節目詳備, 可以按行, 而後亦多更變者, 雖似有效於目前, 必易受弊於末梢, 假使新制勝於舊典, 通變之頻數, 非所以審愼也。 殿下每於法令之間, 雖係細節, 一遵兩典, 如舊典所無, 而新製之不得已創行者, 則必詢于衆, 僉同而後行焉。" 上可之。 意蓋指酒禁之法, 數變更無常而發也。 又言科講之弊曰: "古之取人, 專在科制, 只有大比增別, 其所取之之法, 極其精密, 至於近制, 屢更變改, 若其講規則年少能講者, 未必能於文, 年老能文者, 未必能於講, 實無益於得人才之道, 面試之法, 最爲要道, 然聖上不忍其迫切, 僅一再行而止, 且其行之也不嚴, 則反有弊焉。 臣意則一從兩典取士之法, 嚴其制而擇其才好矣。" 上以輕論法制, 遞其職。 上以五衛將申鏶以老蔭, 前上時弊疏也, 追嘉之, 特賜馬, 朝參進言者, 言雖不中, 以從之意, 幷命右職調用, 以勸來者。


  • 【태백산사고본】 70책 104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73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법제(法制) / 교통-마정(馬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