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 유생이 귀양갈 때 포악하게 한 법사의 조례에 대한 대사간 정실의 상소
대사헌 정실(鄭宲)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신이 지난해에 외람되이 경연의 직함을 띠고 누차 출입하면서 시종하였습니다. 전하께서 경연에서 매양 ‘잘못에 대해 듣기를 좋아한다.[喜聞過]’는 3글자의 하교를 연중에서 하셨는데, 이는 진실로 ‘한마디 말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183) 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처럼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위와 아래가 이야기를 나눌 즈음에 비록 더러 성상의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 있더라도 성명(聖明)의 넓은 도량으로 포용하시어 차분히 말씀하셨으므로, 신이 이루 흠앙(欽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얼마 전에 성상의 마음이 격노하시어 엄한 분부를 거듭 내리셨는데 이 어찌 신이 평소에 전하께 바랐던 바이겠습니까? 아랫사람이 하는 말이 성상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목소리와 기색을 돋구지 말고 부드럽게 처리하셔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이로 인해 갑자기 크게 노하시어 말씀을 예사롭지 않게 하신단 말입니까? 대소 신료들이 두려워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으니, 실로 위대한 성인의 화평한 기상에 흠이 되었습니다. 옛날 주자(朱子)가 상람사(上藍寺)에 있으면서 조서 가운데에 신료들을 꾸짖는 말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한밤중에 일어나 촛불을 켜놓고 상소를 지어 임금의 마음이 열리기를 바랐었는데, 그 내용이 지성스럽고 간곡하여 천고(千古) 단의(丹扆)184) 의 잠언(箴言)이 될 만하였습니다. 또 신이 구구하게 걱정하고 애석해 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여염의 필부를 예로 들어 말하더라도 일로 인해 격노하여 심기를 너무 부린다면 결국 섭양(攝養)하는 방도가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 전하께서는 보령이 8순을 바라다 보는 때를 당하였으므로 서둘러 심신을 보양하고 정력을 아끼셔야 하는데 갑자기 일시의 번뇌로 인하여 지나치게 언성과 기색을 돋우시니, 그윽이 몸을 보존하고 정력을 아끼는 방법에 해가 되리라고 여겨집니다. 이 때문에 신이 애를 태우며 딱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게 하는 공부를 더 하여 극기하는 방도에 유의하고 함양하는 도리에 유념하소서. 그러면 심기가 화평해져서 사물이 다가왔을 때에 순조롭게 대응하여 저절로 중화(中和)의 지경에 이를 것이니, 이는 정말 국가의 끝없는 경사입니다.
그리고 태학은 선(善)의 우두머리인 곳인데, 열성조에서 배양해 온 지 오래 되었으며 우리 성상께서 교육한 것이 지극하였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태학 유생들이 귀양갈 때 법사(法司)의 조례(皂隷)들이 곧장 재사(齋舍)로 들어가 유생들을 몰아내면서 고함을 지르고 윽박지르는 등 하지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돌아보건대 이 태학 유생들은 청금록(靑衿錄)185) 에 이름이 쓰여 있고 현관(賢關)186) 에서 거처하고 있으니, 《예기(禮記)》에 이른바 ‘죽일 수는 있어도 욕되게 할 수 없다.’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상께서 그 날에 내린 처분은 역시 정거(停擧)하거나 귀양을 보내는 데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리고 태학은 성묘(聖廟)를 받드는 곳으로서 금리(禁吏)나 나졸도 감히 임의로 출입할 수 없는데, 해조(該曹)의 조례(皂隷)들이 어떻게 감히 마음대로 성묘의 곁을 거침없이 칩입할 수 있단 말입니까? 듣고 놀랄 만한 일이 이보다 더 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전하께서 어떻게 이런 말을 들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는 이미 여염에 사는 미천한 자들을 포졸을 보내 붙잡는 일과는 다른데도 불구하고 해조의 관원이 신칙(申飭)하지 못하여 이처럼 전에 없던 놀라운 일이 발생하게 하였으니, 현관을 중히 여기는 도리에 있어서 그냥 놔두고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그때 입직하였던 관원을 적발하여 견책하는 것을 결단코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내 비록 부덕하지마는 뜻이 기(氣)를 거느려야 하는 의의를 조금은 알고 있다. 상소 가운데 경계하라고 권면한 것은 임금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니, 깊이 성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조의 조례(皂隷)들이 한 일은 듣기에 매우 놀랍다. 그날 낭관을 해부(該府)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하겠다. 경이 심도(沁都)187) 에서 돌아온 즉시 향리로 갔으므로 내 그대의 수고를 생각하고 있으니, 모름지기 즉시 올라오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0책 104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171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註 183]‘한마디 말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 : 이는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에 나오는 말로, 정공(定公)이 공자에게 묻기를, "말 한마디가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는데 그럴 수 있습니까?"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말 한마디로 꼭 그렇게 된다고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 노릇하기가 어렵고 신하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만약 임금 노릇하기가 어려운 줄을 안다면 말 한마디가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근사하지 않습니까?" 하였음.
- [註 184]
단의(丹扆) : 천자가 제후를 대할 때에 뒤에 치는 붉은 머리 병풍.- [註 185]
청금록(靑衿錄) : 성균관(成均館)·사학(四學)·향교(鄕校)·서원(書院) 등에 있는 유생(儒生)의 명부. 곧 유안(儒案). 청금은 유생들의 복색(服色)을 말하는데, 전하여 유생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음.- [註 186]
현관(賢關) : 성균관의 별칭.- [註 187]
심도(沁都) : 강화.○大司憲鄭實上疏, 略曰:
"臣於昨年, 猥忝經筵之銜, 出入侍從者屢矣。 殿下每以喜聞過三字, 上敎於筵中, 此誠一言興邦矣。 殿下之虛受若是, 故上下酬酢之際, 雖或有咈於淵衷, 而聖度包容, 辭氣從容, 臣於是不勝欽仰矣。 不意日前, 聖心激惱, 嚴敎荐下, 此豈臣平日所望於殿下者哉? 在下者其言不摡於聖心, 則當不大聲色, 雍容處之, 奈何因此而天威遽震, 辭旨非常? 大小惴慄, 景色愁沮, 實欠於大聖人和平底氣像。 昔朱子, 於上藍寺, 聞詔書中有詬詈臣僚之語, 中夜以興, 呼燭作書, 以冀上心之開導者, 至誠懇惻, 可作千古丹扆之箴也。 抑臣有區區憂愛者, 雖以閭巷匹庶言之, 因事有激, 太勞心氣, 終非攝養之方, 況我殿下, 當寶籌望八之時, 正急頣養心神, 愛惜精力, 而遽因一時之煩惱, 至有聲氣之過費, 竊恐有害於保嗇之道。 此臣所以焦慮而憫迫者也。 伏願聖明, 更加新又新之工, 着意於克治之方, 留神於涵養之道, 心和氣平, 物來順應, 自臻於中和之域, 則誠國家無疆之休也。 且太學, 是首善之地, 而列聖朝所以培養者久矣, 我聖上所以敎育者至矣。 日昨齋儒輩之被竄也, 法司皂隷, 直入齋舍, 驅出儒生, 咆哮迫脅, 無所不至, 顧此齋儒, 名列靑衿, 居在賢關, 則傳所謂可殺而不可辱者也。 聖上當日處分, 亦不過或停或竄, 而且太學, 是聖廟所奉之地, 禁吏邏卒, 亦不敢任意出入, 則該曹下隷, 渠何敢恣意隳突於聖廟之側乎? 聽聞之驚駭, 莫過於此, 而殿下亦何由聞之乎? 此旣與閭里賤隷發差推捉之事有異, 而該曹官員, 不能申飭, 致有此無前之駭擧, 其在重賢關之道, 不可置而不論。 臣謂其時入直官員, 摘發譴責, 斷不可已也。" 答曰: "予雖涼德, 粗知志率氣之義。 疏中勉戒, 可見愛君, 可不猛省曹隷事? 聞甚可駭。 其日郞官, 今該府處之。 卿自沁都, 來卽尋鄕, 予庸思之, 須卽上來。"
- 【태백산사고본】 70책 104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171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註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