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손에게 효장묘의 제문을 읽어 보도록 하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는데, 왕세손이 흑립(黑笠)과 참포(黲袍)·흑대(黑帶) 차림으로 시좌(侍坐)하였다. 임금이 효장묘(孝章廟)의 제문을 가지고 들어와서 읽어 보도록 하고 이어 세손을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너의 소후(所後) 부모는 모두 효성이 있었기에 이러한 보답을 받게 된 것이다. 너에게 아비[禰]의 자리[位]가 없으면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하겠느냐? 네가 나를 섬기기는 효장이 나를 섬기듯이 하고 나라를 통어(統御)하기는 썩은 새끼로 육마(六馬)057) 를 어거하듯 하라. 제왕가(帝王家)는 범인과는 달라 한 번만 혹시 삼가지 않으면 아무리 필부(匹夫)가 되고 싶어 해도 될 수가 없다. 지금 너에게 하유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사신(史臣)은 상세히 기록하고, ‘1본(本)은 춘방(春坊)으로 하여금 써 올리게 하여 조석으로 살펴보도록 하라."
하였다. 그 글에 이르기를,
"지금 나는 너를 효장(孝章)의 후사로 삼았다. 아! 몇 년이나 끊어졌던 종통(宗統)이 다시 이어졌으니, 동궁의 칭호를 전대로 쓰는 것은 마땅치 않다. 의당 근본부터 바루어야 하는 것이다. 아! 막중한 3백 년 종통에 나는 자식의 자리가 없었고 너에게는 아비의 자리가 없었으니, 이것을 중절(中絶)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번 일로서 일후에 흑 사설(邪說)이 일어난다면 이는 한갓 우리 종통을 어지럽힘이 될 뿐만 아니라, 내가 무슨 낯으로 지하에 돌아가 열성조를 뵙는단 말이냐? 또 혹시 박치륭(朴致隆)같은 자가 다시 나와서 현혹한다면 비단 나에게 불충할 뿐만 아니라, 너의 아비에게도 되려 욕을 끼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매양 태갑편(太甲篇)058) 을 외우게 하였는데, 너의 아비로 하여금 전후로 기술한 글을 본받게만 할 수 있었더라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느냐? 아! 《자성편(自省編)》·《심감(心鑑)》·《훈서(訓書)》·《귀감(龜鑑)》 등의 책은 훈계가 더욱 간절하고 뜻은 더욱 깊은 것이었거만 한갓 말로만 가르친 꼴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너의 할아비가 주야로 가슴을 치며 속을 태운 연유인 것이다.
아! 위호(位號)를 회복하고 묘우(廟宇)를 세웠으니 너의 아비에게는 더없이 곡진(曲盡)하다 하겠다. 이 뒤에 만일 다시 이 일을 들추어 내는 자가 있다면 이는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역신(逆臣)인 것이며, 너도 혹 그러한 말에 동요되면 이 또한 할아비를 잊고 아비를 잊은 불효가 된다. 나의 이 뜻을 간직한다면 어찌 한갓 물리칠 뿐이겠는가? 중률(重律)로 처단해야 한다. ‘중률’ 두 글자는 너를 살육(殺戮)으로 인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예기(禮記)》에 이른바 ‘오직 인인(仁人)이라야 방축(放逐)하고 유배하여 중국(中國)에서 함께 지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인륜은 지극히 중한 것이니, 비록 사서인(士庶人)이라 하더라도 한 번 후사를 정하면 뒤에 비록 아들을 둔다 해도 그는 중자(仲子)가 되는 것이니 이는 천경(天經)이요 지의(地義)인 것이다. 아! 너는 효장과 효순(孝純)에게 자식된 도리를 다하면 종사(宗社)가 반석처럼 튼튼하고 대대로 서로 승계하여 천억 년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 3백 년 종사가 너에게서 망하게 되느니라.
사도(思悼)로 말하자면 너도 그날 너의 어미가 나에게 아뢴 말을 듣지 않았느냐?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된 것도 성상의 은총이옵니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이 효성스러웠다. 이는 한갓 너의 어미의 마음만이 아닌 것이다. 너의 아비도 그날의 광경을 보았다면 아! 유명(幽明)이 바뀌었지만, 필시 너의 어미와 같이 나에게 고마워하였을 것이다. 아! 너의 할머니는 대의(大義)로써 능히 이를 판단하였으니, 재작년의 일은 너의 어미의 효심으로써 또한 간격(間隔)이 없었을 것이다. 아! 지금 나는 종국(宗國)을 위하여 쇠미한 가운데에서도 궐연(蹶然)히 일어나 이 일을 하였으니, 비록 팔역(八域)에 보이고 1백대에 전한다 해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고 길이 내세울 말이 있을 것이다. 아! 며칠 동안 이 궐(闕) 저 궐에서 너도 너의 어미나 할머니의 기상에 조금도 원망하는 기미가 없었음을 보았을 것이다. 충자(沖子)야 너도 어찌 감히 생각지 않겠느냐? 아! 전(殿)에 아뢰는 것도 중한 일이다. 너의 도리에 있어서는 사도묘(思悼廟)에도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나의 오늘 훈계를 지켜 항상 생각을 이에 두어 종국을 실추하지 않는다면 이 묘우도 앞으로 태실(太室)을 따라 길이 전해질 것이니 그리되면 어찌 너의 효도가 아니겠느냐? 너의 효도가 아니겠느냐? 또 장일(葬日)에 친히 신주의 면(面)을 쓴 것도 너의 도리에 어찌 감히 손을 대겠으며 해동(海東)의 신자(臣子)로서 누가 감히 용의(容議)하겠느냐? 이는 너무 심한 말 같다. 지금부터는 종통이 만세토록 크게 정해졌으니 너의 소생부(所生父)의 묘우도 저절로 1백대토록 편안하게 될 것이다. 아! 무슨 일이 이보다 더 크다 할 것인가? 만일 사설(邪說)에 흔들려 한 글자라도 더 높혀서 받들면 이는 할아비를 잊은 것이고 사도(思悼)도 잊은 것이 된다. 어찌 차마 이를 하겠느냐? 어찌 차마 이를 하겠느냐? 아! 충자야 이를 명심하라. 이를 명심하라. 이렇게 하유하는 것은 다른 강연(講筵)의 말과는 사체가 크게 다르니, 사관으로 하여금 청사(靑史)에 쓰게 하고 또한 정원으로 하여금 조보(朝報)에 반포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0책 103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15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역사-편사(編史)
○上引見大臣備堂。 王世孫, 以黑笠黲袍黑帶, 侍坐。 上命持入孝章廟祭文讀之, 仍顧謂世孫曰: "汝之所後父母, 皆有誠孝, 所以受此報也。 汝無禰位, 則何以爲人? 汝事予則如孝章之事予者, 御國則如朽索之御六馬也。 帝王家異於凡人, 一或不愼, 則雖求爲匹夫, 不可得也。 今有欲諭爾者。 史臣詳錄之, 一本令春坊書入, 俾朝夕省覽焉。" 其文曰:
"今予使爾爲孝章嗣。 噫! 幾年宗統絶而復續, 東宮稱號, 不宜仍舊。 其宜端本。 嗚呼! 莫重三百年宗統, 予無子位, 爾無禰位, 是謂中絶也。 因此日後, 若有邪說闖起, 此非徒亂我宗統, 予何顔歸拜列祖? 其有如朴致隆者復出而眩之, 則非徒不忠於予, 亦反貽辱於爾父也。 嗚呼! 每誦《太甲篇》, 使爾父若體前後述編, 豈有今日? 噫! 《自省編》ㆍ《心鑑》ㆍ《訓書》ㆍ《龜鑑》等書, 戒益切意益深, 而徒歸言敎。 此爾祖所以夙宵撫心焦中者也。 嗚呼! 復其號置其廟, 於爾父曲盡無餘。 此後如有更提此事者, 此無父無君之逆臣也, 爾又或動於此說, 則此亦忘祖忘父之不孝也。 將予此意, 豈徒嚴斥? 置諸重律。 重律二字, 非導汝以殺也。 卽傳所云‘惟仁人放流之, 不與同中國者也。’ 噫! 人倫至重, 雖士庶, 旣定其嗣, 則後雖有子, 爲仲子, 此天經地義也。 嗚呼! 爾於孝章孝純, 盡子之道, 宗社有磐石之固, 世世相承, 可垂千億。 不然, 嗚呼! 三百年宗社, 於爾將亡。 以思悼言之, 爾其日豈不聞爾母奏予之言乎? 今至於此, 是亦恩也云, 孝哉其言。 此非徒爾母之心也。 雖爾父見其日光景, 吁嗟幽冥, 若爾母而必感予矣。 嗚呼! 爾祖母以大義能辦此, 再昨年事, 爾母孝心, 亦無間焉。 而吁嗟! 今予爲宗國, 衰中蹶然而爲此事, 雖示諸八域, 垂之百代, 可無愧而永有辭焉。 噫! 數日之間, 彼闕此闕, 爾見爾母與爾祖母氣像, 少無幾微之色。 沖子焉敢不思, 焉敢不思? 噫! 奏殿亦重。 在爾之道, 於思悼廟, 亦盡子道, 而守予今日之訓, 念念在玆, 不墜宗國, 則此廟亦將隨太室而永垂, 豈非爾孝, 豈非爾孝? 且葬日親題主面, 於爾之道, 其何敢下手, 海東臣子, 孰敢容議? 此猶甚言者。 從今以後, 宗統大定於萬世, 爾所生父之廟, 自安於百代。 噫! 奚云其大? 若動邪說, 雖一字隆奉, 是忘其祖也, 忘思悼也。 豈忍爲此, 豈忍爲此? 嗚呼! 沖子銘佩于此, 銘佩于此。 若是諭焉, 此與他筵說, 事體大有異焉, 令史官, 書諸靑史, 亦令政院, 頒布朝紙。"
- 【태백산사고본】 70책 103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15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