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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03권, 영조 40년 2월 8일 경인 1번째기사 1764년 청 건륭(乾隆) 29년

충량과를 친림하고 대사례를 행하다

임금이 건명문(建明門)에 나아가 충량과에 친림(親臨)하고 이어 대사례(大射禮)를 행하였다. 웅후(熊帿)033) 를 설치하매 임금이 내려와서 사위(射位)로 나가니, 기신(耆臣)과 문·무관이 동서로 나누어 서로 바라보고 섰다. 상호군 어영 대장 김한구(金漢耉)결습(決拾)034) 를 올리고, 훈련 대장 구선행(具善行)이 활을 바쳤으며, 금위 대장 이장오(李章吾)가 화살을 바치자, 악관이 풍악을 울리고 이수(貍首)를 노래하였다. 병조 판서 이창수(李昌壽)가 고전(告箭)하니, 임금이 승시(乘矢)035) 를 쏘아 2시는 날리고 2시로 과녁의 복판과 과녁의 변죽을 연중(連中)하자 여러 신하들이 둘러서서 구경하는 것이 담을 둘러친 것 같았다. 대신이 헌하(獻賀)하기를,

"실로 만세에 무강하신 복입니다."

하였다. 웅후를 거두어 육일각(六一閣)에 보관하라고 명하고, 쏘았던 활과 화살을 기신(耆臣) 판부사 유척기(兪拓基)에게 주어 돌아가서 영수각(靈壽閣)에 보관하라고 하였다. 다시 미후(麋帿)를 설치하고 기신에게 쏘라고 명하여 맞힌 사람은 활 하나를 상으로 주고 맞히지 못한 사람은 벌로 풍치(豊鱓)036) 를 들게 하였으며 음례(飮禮)를 의식대로 거행하였다. 효종조 팔장사(八壯士)037) 의 자손을 불러 하유하기를,

"장사의 자손이 맞히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내일 다시 시험을 보이겠다."

하고, 친히 ‘망팔에 갑신년(甲申年)을 거듭 만나서, 단지 열천(冽泉)038) 만 외우노라[望八重逢只誦冽泉].’의 사언(四言) 한 귀를 지어 여러 신하들에게 화답하여 지어 올리라고 명하였다. 이어 충량과의 과차(科次)를 매겨 김노순(金魯淳)·김장행(金章行)·김이소(金履素) 등 3인을 뽑았는데, 무과에 입격한 자도 14인이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선원(仙源)039) ·청음(淸陰)040) 의 후예는 모두 참방(參榜)하였는데, 유독 삼학사(三學士)의 후예가 없는 것이 한스럽다."

하고, 이어 신은(新恩)041) 을 거느리고 풍악을 울리며 대내(大內)로 돌아왔다.


  • 【태백산사고본】 70책 103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157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註 033]
    웅후(熊帿) : 임금이 활을 쏠 때 사용하는 솔[帿], 솔은 사포(射布)에 짐승의 머리를 그린 것인데, 어사(御射)에 쏘는 웅후(熊帿), 종친과 문무관(文武官)이 쏘는 미후(麋帿), 무과 교습(武科敎習)에 쏘는 시후(豕帿) 등이 있었음.
  • [註 034]
    결습(決拾) : 깍지와 팔찌.
  • [註 035]
    승시(乘矢) : 네 개 한 묶음으로 된 화살.
  • [註 036]
    풍치(豊鱓) : 만배(滿杯).
  • [註 037]
    팔장사(八壯士) : 병자 호란으로 봉림 대군(鳳林大君:효종)이 심양(瀋陽)에 볼모로 잡혀가 있을 때 호종한 여덟 명의 장사(壯士). 곧 박배원(朴培元)·신진익(申晉翼)·오효성(吳孝誠)·조양(趙壤)·장애성(張愛聲)·김지웅(金志雄)·장사민(張士敏)·박기성(朴起星)임. 이들은 귀국하여 별군직청(別軍職廳)에 소속되었음.
  • [註 038]
    열천(冽泉) : 찬 샘물이 아래로 흘러 풀 부리가 상하듯이 명(明)나라가 망하여 우리 나라가 곤폐(困弊)해졌다는 뜻으로, 《시경(詩經)》의 하천장(下泉章)을 말함.
  • [註 039]
    선원(仙源) : 김상용(金尙容)의 호.
  • [註 040]
    청음(淸陰) : 김상헌(金尙憲)의 호.
  • [註 041]
    신은(新恩) : 새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

○庚寅/上御建明門, 親臨忠良科, 仍行大射禮。 設熊帿, 上降就射位, 耆臣文武分東西相向立。 上護軍御營大將金漢耉進決拾, 訓鍊大將具善行奉弓, 禁衛大將李章吾奉矢, 樂官奏樂而歌貍首。 兵曹判書李昌壽告箭, 上發乘矢二矢, 揚二矢以貫邊連中, 諸臣環而觀者如堵。 大臣獻賀曰: "實萬世無疆之福也。" 命撤熊帿, 藏於六一閣, 以所射弓矢, 賜耆臣判府事兪拓基, 歸藏於靈壽閣。 更設麋帿, 命耆臣射之, 中者賞以一弓, 不中者罰以豐觶, 行飮禮如儀。 召孝廟朝八壯士子孫諭之曰: "壯士子孫, 不中可恨也。 明當更試也。" 親製望八重逢只誦冽泉四言一句, 命諸臣賡進。 仍科次忠良科, 取金魯淳金章行金履素等三人, 武科入格者, 亦十四人。 上曰: "仙源淸陰之裔, 皆參榜, 而獨恨無三學士後也。" 仍率新恩張樂, 還大內。


  • 【태백산사고본】 70책 103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157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