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02권, 영조 39년 11월 29일 임오 1번째기사
1763년 청 건륭(乾隆) 28년
약방에서 입진하고, 김한구가 강화 방수의 편의에 대한 계책을 진달하다
약방(藥房)에서 입진하였다. 어영 대장 김한구(金漢耉)를 소견하였다. 김한구가 강화(江華) 방수(防守)의 편의(便宜)에 대한 계책을 진달하면서 아뢰기를,
"영종도(永宗島)는 이곳이 삼남(三南) 수도(水路)의 요충지이고 교동(喬桐)은 곧 양서(兩西)235) 수로의 인후(咽喉)에 해당되는 곳입니다. 지금 수사(水使)가 교동에 있기 때문에 영종도에서 그 절제(節制)를 받고 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긴급한 일이 발생했을 적에 품령(稟令)하기가 곤란합니다. 교동과 영종도를 나누어 좌·우 방어사(左右防禦使)로 삼고 진보(鎭堡) 가운데 교동에 가까운 것은 교동에 예속시키고 영종도에 가까운 것은 영종도에 예속시켜 강화를 호위하게 하소서. 그리고 나서 유수(留守)를 삼도 통어사(三道統禦使)로 삼아 관할하게 한다면 실로 편의하겠습니다."
하자,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이 말하기를,
"이는 바로 고(故) 판서 김진규(金鎭圭)의 계책입니다."
하니, 임금이 그곳의 지형(地形)을 그려서 올리라고 명하였으나, 일이 결국은 정지되고 말았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102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5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註 235]양서(兩西) : 황해도와 평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