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묘와 영녕전을 배알하고, 일흔살이 된 것을 시민들에게 유시하다
임금이 태묘(太廟)를 배알(拜謁)하고 이어 영녕전(永寧殿)을 배알하였으며, 창덕궁에 들어가 진전(眞殿)을 봉심(奉審)하였다. 회가(回駕)할 때 종가(鍾街) 앞에 이르러 시민(市民)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임어(臨御)한 지 4기(紀) 동안 한 가지 혜정(惠政)도 없이 이제 칠순을 맞아 다시 너희들을 보게 되니, 내 심히 겸연쩍다."
하였다. 드디어 지나는 길에 기로소(耆老所)에 들러 영수각(靈壽閣) 섬돌 위에 나아가 승지에게 어첩(御牒)을 받들어 내오라고 명하여 임금이 직접 가늘게 쓰기를,
"옛날 영락(永樂)003) 갑신년004) 은 곧 우리 성조(聖祖)께서 춘추가 일흔이셨던 때이다. 지금 소자(小子)가 겨우 일흔이 되는 원조(元朝)에 공경히 영수각에 절하게 되니, 실로 소자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다. 배수(拜手)하고 기록하여 성열(盛烈)을 드날리노라."
하고, 쓰기를 마치자 다시 합(閤) 안에 봉안(奉安)하라고 명하였다. 이어 또 ‘기영각전 칠순군신(耆英閣前七旬君臣)’이란 여덟 글자를 손수 쓰고, 기당(耆堂)으로 하여금 화답(和答)해 올리라 명하였다. 또 육상궁(毓祥宮)으로 나아가 전배(展拜)를 마친 다음 어가가 신무문(神武門)을 경유하여 근정전(勤政殿)으로 나아가 진하(陳賀)를 받고 반사(頒赦)하였다. 임금이 직접 반사문(頒赦文)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아! 비록 이 해를 만났으나 믿고 의지할 부모가 안 계시니, 아롱진 옷[斑衣]을 입고 즐겁게 해드림을 장차 어디에 베풀겠는가? 여러 신하들이 양해하지 아니하고 옛 예(禮)를 준행하려 하기에 크게 벌리는 일은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칭경(稱慶)하는 의절(儀節)은 억지로 따랐노라. 이에 이 해 정월 초하루에 삼가 종묘·사직에 고하고 근정전 터에서 반사하노라. 아! 옛 대궐에서 산호(山呼)하는 소리를 3백 년 뒤에 다시 듣고 칭경하여 추은(推恩)하는 일을 50년 사이에 재차 거행하니, 보잘것 없는 나 불곡(不穀)005) 이 어찌하여 이에 이르게 되었는가? 지금 이후로 양조(兩朝)의 성사(盛事)는 장차 만세(萬世)토록 민멸되지 아니할 것이며, 과매(寡昧)의 고심(苦心) 또한 천추(千秋)에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뭇 신하들이 인협(寅協)할 것을 권면하고 삼농(三農)에 풍년이 들기를 축원하노라."
하였다. 대개 올해는 성수(聖壽)가 일흔인 것은 태조와 부합되고, 즉위한 연수가 마흔에 꽉 찬 것은 또한 숙종 계사년006) 의 경사와 같았으므로 교문(敎文)의 사의(辭意)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하교하기를,
"추은하는 한 가지 일을 이미 태실(太室)에 아뢰었고, 또 정축년의 고사가 있으니, 지금 어찌 다르게 하랴?"
하고, 마침내 전조(銓曹)에 명하여 동중추(同中樞)는 전례에 의거해 연부(連付)하게 하니, 이때 나이 여든으로 추은된 사람이 무릇 2백여 명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10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2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註 003]영락(永樂) : 명(明)나라 성조(成祖)의 연호.
- [註 004]
○上謁太廟, 仍謁于永寧殿, 入昌德宮, 奉審眞殿。 回駕時, 至鍾街前, 諭市民曰: "臨御四紀, 無一惠政, 今當七旬, 復見汝等, 予甚歉然。" 遂歷臨耆老所, 御靈壽閣陛上, 命承旨奉出御牒, 上親自細寫, 若曰: "昔洪 武甲申, 卽我聖祖春秋七十也。 今小子僅七十元朝, 祗拜靈壽閣, 寔小子夢想之外。 拜手以記, 揄揚盛烈。" 寫畢, 更命奉安于閣中。 仍又手書耆英閣前七旬君臣八字, 命耆堂賡進。 又詣毓祥宮展拜訖, 駕由神武門, 御勤政殿, 受賀, 頒赦。 上親製頒赦文, 略曰: "嗚呼! 雖逢此年, 無怙無恃, 斑衣奉歡, 將施於何? 諸臣不諒, 欲遵舊禮, 張大之事, 拒而不受, 稱慶之節, 勉而從之。 廼於本年正月初一日, 祗告廟社, 頒赦於勤政殿基。 嗚呼! 舊闕山呼之聲, 復聞於三百年之後, 稱慶推恩之擧, 再行於五十載之間, 眇予不穀, 何以致此? 從今以往, 兩朝盛事, 將不泯於萬世, 寡昧苦心, 亦有辭於千秋。 因此勉寅協於群僚, 祝有年於三農。" 蓋今年聖壽七十, 符於太祖, 而卽阼年數, 恰滿四十, 亦同於肅廟癸巳之慶, 故敎文辭意如此。 敎曰: "推恩一事, 旣奏太室, 又有丁丑故事, 今何異焉?" 遂命銓曹, 同中樞依例連付, 時年八十推恩者, 凡二百餘人。
- 【태백산사고본】 69책 10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2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註 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