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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00권, 영조 38년 11월 9일 정묘 2번째기사 1762년 청 건륭(乾隆) 27년

삼남의 흉년을 진휼하기 위하여 균역청 신포를 반으로 감하다

임금이 경현당(景賢堂)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호남 안집사의 장계(狀啓)를 보니, 빈궁한 백성의 참상을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팔도가 풍년이 들었다면 사관(史官)이 마땅히 크게 풍년이 들었다고 썼을 것인데, 삼남이 이와 같으니 밤낮으로 노심 초사하고 있다. 균역청(均役廳)이 없을 때에도 나라가 또한 지탱해 나갔는데, 내가 어찌 균역청 하나를 아껴서 삼남의 적자를 진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남 가운데 아주 심한 읍은 특별히 신포(身布)의 반을 감하도록 하라."

하였는데, 판중추 이정보(李鼎輔)가 말하기를,

"당초에 균역청을 설치한 것은 뜻이 있어서였습니다만 특은(特恩)으로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였고, 호조 판서 서지수(徐志修)는 말하기를,

"균역청에서 옮겨 쓰기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법이고, 흉년에 감하여 지급하는 것은 변통하는 규례이니, 특별히 감하여 지급하라고 허락하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호판의 분수(分數)가 매우 명확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100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17면
  • 【분류】
    재정-역(役) / 군사-군역(軍役) / 구휼(救恤)

○上御景賢堂, 引見大臣備堂。 上曰: "見湖南安集使狀啓, 窮民之狀, 如目覩矣。 八路豐登, 則史官當書大有年, 而三南如此, 日夕焦心矣。 無均廳之時, 國亦支堪, 吾何愛一均廳, 而不恤三南之赤子乎? 三南尤甚邑, 特減身布之半。" 判中樞李鼎輔曰: "當初均廳之設立有意, 而特恩賑民好矣。" 戶曹判書徐志修曰: "均廳之不許移用, 常法也, 凶年之減給, 變禮也, 特許減給好矣。" 上曰: "戶判分數甚明矣。"


  • 【태백산사고본】 68책 100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17면
  • 【분류】
    재정-역(役) / 군사-군역(軍役)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