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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00권, 영조 38년 7월 23일 계미 1번째기사 1762년 청 건륭(乾隆) 27년

장례일에 사도 세자의 묘에 거둥하다

임금이 사도 세자(思悼世子) 묘에 거둥하였는데, 이 날은 사도 세자의 장례일이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친히 가서 둘러 보고, 경기 감사(京畿監司) 홍계희(洪啓禧)를 잡아들이라고 명하였는데, 경기 고을의 백성들이 올라오는 것을 본 까닭에 이런 명이 있었다. 임금이 정자각(丁字閣)에 들어가 곡림(哭臨)하고 나서 임금이 말하기를,

"상묘(上墓)는 언제인가?"

하니, 좌의정 홍봉한이 말하기를,

"미시(未時)에 상묘하고 현실(玄室)을 내리는 것은 신시(申時) 초 일각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13일의 일은 종사에 관계된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아버지라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니, 오늘은 아버지를 부르는 마음에 보답하려 한다. 하나는 내가 20년 부자지은(父子之恩)을 마치려 온 것이고 하나는 내가 친히 제주(題主)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친히 제주하면 다른날에 반드시 신주를 묻어버리자는 논의가 없을 것이다. 뒷일은 비록 경들이라 해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계빈전(啓殯奠)에 참여하고자 하니, 대축(大祝)은 옥당(玉堂)에서 하고 봉작(奉爵)은 승지가 하도록 하라."

하였다. 홍봉한이 말하기를,

"신들도 또한 곡하는 예에 참여해야 합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참여하라. 또한 백관도 참여하라."

하였다. 신여(神輿)가 묘 위에 오르자 현실(玄室)을 퇴광(退壙)에 받들었고, 홍준한(洪駿漢)·홍낙신(洪樂信)·홍낙임(洪樂任) 등이 관의 줄을 끌었다. 임금이 친히 제주(題主)하고, 환궁할 때에 관왕묘(關王廟)를 들렀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10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0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사법-탄핵(彈劾)

○癸未/上幸思悼墓, 是日卽思悼世子葬日也。 上親自臨視, 上命拿入京畿監司洪啓禧, 上見畿邑民人之上來, 故有是命。 上入丁字閣哭臨, 上曰: "上墓何時。" 左議政洪鳳漢曰: "未時上墓, 而下玄室申初一刻矣。" 上曰: "十三日事。 以事關宗社也。 其時始聞呼父聲, 今日欲報呼父之心矣。 一則予欲終二十年父子之恩而來, 一則予欲親自題主。 予若親題, 則他日必無埋主之議矣。 他日事, 雖卿等, 亦豈知之乎? 予欲參啓殯奠, 大祝以玉堂爲之, 奉爵以承旨爲之。" 鳳漢曰: "臣等亦參哭禮乎?" 上曰: "爲之。 百官亦爲之。" 神輿上墓, 奉玄室于退壙, 洪駿漢洪樂信樂任等引柩索。 上親自題主, 還宮時歷臨關王廟


  • 【태백산사고본】 68책 10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0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