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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98권, 영조 37년 9월 20일 을묘 3번째기사 1761년 청 건륭(乾隆) 26년

5, 6월의 일기를 들여와 서명응의 글을 보다

임금이 5, 6월의 일기(日記)를 들여오라고 명하고, 승지 이현중(李顯重)에게 언사(言事)에 대한 상서를 상고해 보고 아뢰도록 명하니, 이현중이 말하기를,

"대단하게 언사한 것이 없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과연 없는가?"

하였다. 이현중이 말하기를,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분명히 없던가?"

하였는데, 이현중이 자리를 피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지척의 전석(前席)에서 신이 과연 속였습니다. 만약 보실 만한 글이면 전하께서 반드시 이미 보셨을 것이요, 보시지 않은 것은 전하께서 보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어찌 상고해 내서 보지 않으십니까?"

하니, 임금이 읽으라고 명하였다. 이현중이 말하기를,

"전하께서 또한 어찌 차마 하루아침에 이와 같은 경지로 몰아넣으려 하시는 것입니까? 신은 비록 죽는 한이 있어도 감히 읽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일기를 올리게 하여 서명응(徐命膺)의 글을 보고 오래도록 잘했다고 칭찬하였다. 이현중이 말하기를,

"오늘의 신자(臣子)가 숨기고 전하께 고하지 않는 것은 충성이 아니요, 드러내어 전하에게 고하는 것도 또한 충성이 아닙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말고삐를 부여잡고 〈간하자는〉 의논220) 과 교외에서 맞이하자는 의논이 어떠한 사람에서 발론되었는가?"

하니, 이현중이 말하기를,

"신이 막 초토(草土)221) 를 치루느라 미처 들어서 알지를 못하였으니, 고굉(股肱)의 신하에게 하문(下問)하시면 아실 것입니다. 신과 같이 소원(疎遠)하고 미천(微賤)한 자가 어찌 감히 앙달(仰達)하겠습니까?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그 어찌 모르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7책 98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79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역사-편사(編史)

  • [註 220]
    말고삐를 부여잡고 〈간하자는〉 의논 : 이는 은(殷)나라 제후 고죽군(孤竹君)의 아들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칠 때 말고삐를 부여잡고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는데, 무왕이 이미 천하를 손안에 넣자 백이·숙제는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首陽山)에서 채미(採薇)하며 숨어 살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임.
  • [註 221]
    초토(草土) : 거적 자리와 흙 베개의 뜻으로 거상중(居喪中)임을 말함.

○上命入五六月日記, 命承旨李顯重考見言事, 上書以奏, 顯重曰: "無大段言事矣。" 上曰: "果無之乎?" 顯重曰: "無之矣。" 上, 厲聲曰: "分明無之乎?" 顯重避席涕泣曰: "咫尺前席, 臣果欺罔矣。 若是可見之書, 則殿下必已見之, 而未見者, 以殿下不必見也。 殿下何不考出而見之乎?" 上命讀之。 顯重曰: "殿下亦何忍一朝驅入於如此之地? 臣雖死, 不敢讀矣。" 上遂上日記, 見徐命膺書, 稱善久之。 顯重曰: "今日臣子之隱而不告於殿下者, 非忠也, 揚而告於殿下者, 亦非忠也。" 上曰: "叩馬之議, 郊迎之論, 發諸何人乎?" 顯重曰: "臣纔經草土, 未及聞知, 下詢股肱之臣則可知也。 如臣疎遠之微賤者, 何敢仰達乎?" 上曰: "其豈不知耶?"


  • 【태백산사고본】 67책 98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79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