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릉에 거둥하다
임금이 명릉(明陵)에 거둥하였다. 임금이 천담 융복(淺淡戎服)을 갖추어 입고 보연(步輦)으로 광달문(廣達門) 밖에 이르러 말을 탔다. 선전관(宣傳官)을 불러들여 영기(令旗)로서 작문(作門)196) 에 알리게 하여 말하기를,
"만약 시끄럽게 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군률(軍律)에 의거하도록 하라."
하고, 궁을 지키는 종사관(從事官)을 불러들여 말하기를,
"위내(衛內)에서 시끄럽게 하는 자는 수궁 대장(守宮大將)에게로 보내고, 위외(衛外)에서 시끄럽게 하는 자는 유도 대장(留都大將)에게로 넘겨주라."
하였다. 임금이 창릉(昌陵)의 점(店) 길 곁을 지나는데 구걸하는 아이가 호소하고 있으므로 임금이 보고 감동하여 특별히 쌀을 주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명릉(明陵)에 나아가 천담복(淺淡服)과 익선관(翼善冠)을 갖추고 능상(陵上)을 봉심(奉審)하였으며, 이어서 난간석(欄干石) 앞으로 나아가 엎드려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았는데, 때가 마침 따가운 햇빛의 정오(正午)였다. 여러 신하가 초조하고 민박(憫迫)하여 어찌할 줄 모르는 정성으로 우러러 진달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 심이지(沈履之)가 말하기를,
"전하의 이 거조는 성효(聖孝)의 만분의 일을 펴는 데에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선왕(先王)과 선후(先后)께서 양양(洋洋)하게 척강(陟降)하시는 곳에 도리어 슬픔을 끼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곧 일어나서 새 명릉과 익릉(翼陵)·경릉(敬陵) 두 능에 나아가 전알 봉심(展謁奉審)하고 봉현(蜂峴)을 들려 구선복(具善復)과 지관(地官) 안재건(安載建)을 소견(召見)하고 보토(補土)하는 데 대해 장(長)·광(廣)·고(高)·저(低)를 하순(下詢)하였으며, 도로 재실에 나아가 임금이 사지 겸사복(事知兼司僕)·보련 차비 별감(步輦差備別監)·호련대(扈輦隊)·근장 군사(近仗軍士)에게 각각 무명 1필(匹)을 하사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7책 98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75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사급(賜給)
- [註 196]작문(作門) : 지키는 병사를 두고 출입하는 것을 단속하는 군영(軍營)의 문.
○己卯/上幸明陵。 上具淺淡戎服, 以步輦至廣達門外乘馬。 召入宣傳官, 以令旗知委于作門曰: "若有喧嘩者, 當依軍律。" 召入守宮從事官曰: "衛內喧嘩者, 送守宮大將, 衛外喧嘩者, 出付留都大將。" 上過昌陵店道傍, 有乞兒號訴, 上見而感之, 特命給米。 上詣明陵, 具淺淡服翼善冠, 奉審陵上, 仍進伏欄干石前, 良久不起, 時, 烈陽正午。 諸臣仰陳焦迫罔措之忱, 上不聽。 沈履之曰: "殿下此擧, 不足展聖孝之萬一, 而洋洋陟降之地, 乃反爲貽戚於我先王先后乎?" 上卽起, 詣新明陵及翼ㆍ敬兩陵, 展謁奉審, 歷臨蜂峴, 召見具善復及地官安載健, 下詢補土長廣高低, 還御齋室, 上命賜事知兼司僕ㆍ步輦差備別監ㆍ扈輦隊ㆍ近仗軍士, 各木一匹。
- 【태백산사고본】 67책 98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75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