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영조실록 97권, 영조 37년 6월 13일 경진 4번째기사 1761년 청 건륭(乾隆) 26년

안국동 인현 왕후의 사제에 가다

임금이 안국동(安國洞)인현 왕후(仁顯王后)가 왕비의 자리에서 밀려났을 때의 사제(私第)에 나아갔는데, 승지 조영진(趙榮進)이 말하기를,

"신이 어렸을 때에 신의 어미의 말을 들었는데, 지금 성후(聖后)께서 기거하셨던 방을 보니 들은 것과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기사년136)갑술년137) 에 있어서는 바로 6년의 오랜 세월이었으나, 마치 제(帝)가 방주(房州)에 있었던 것138) 과 같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지난해에 〈인현 왕후의〉 수필(手筆)을 받들어 열람하고서 다시 6년 동안 거처하신 침실(寢室)을 보았으니, 거의 유감이 없다."

하고, 민씨(閔氏) 여러 사람과 성후(聖后)의 친속(親屬)을 불러 들이도록 명하고, 그 침실을 감고당(感古堂)이라고 이름을 짓고 어필(御筆)로 그 편액(扁額)을 써서 새겨서 걸도록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태어난 것이 마침 갑술년이었는데, 바로 성후(聖后)께서 복위(復位)되던 해였다. 이런 일 때문에 신축년139) 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부류들은 나에게 대해 감심(甘心)해 왔다."

하고, 임금이 조영진(趙榮進)을 특별히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으로 제배하도록 명하고 여러 사람에게는 모두 물품을 차등 있게 내려 주었으며, 고 현감(縣監) 민진영(閔鎭永)의 처(妻)에게는 의자(衣資)와 식물(食物)을 내려 주게 하였다. 지나는 길에 육상궁(毓祥宮)에 전배(展拜)하였는데, 길가에 있는 충민공(忠愍公) 이봉상(李鳳祥) 집안의 정문(旌門)을 보고 예관(禮官)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도록 명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조영진은 성후(聖后)의 가까운 족속(族屬)으로 그 고사(故事)를 안다고 하면서 스스로 앞장서서 인도하며 어느 방을 가리키며 이것이 바로 성후가 거처한 곳이라고 말하였는데, 대개 민씨 집안에서 전해지는 말을 들으면 조영진이 가리키며 인도한 것과는 일체 서로 반대가 된다. 인신(人臣)이 임금에게 아룀에 있어 감히 거짓으로 속이는 말을 하지 못하는데, 감히 그가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안다고 하면서〉 스스로 속이는 구덩이로 빠져드는 것을 달갑게 여기니, 비록 이것으로 연유하여 높은 직질(職秩)에 발탁되고 임금의 은총을 견고하게 하기는 하였지만, 그 한 세대에서 비웃으며 손가락질하는 것은 유독 부끄럽지 않은가?"


  • 【태백산사고본】 67책 97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68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비빈(妃嬪)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윤리-강상(綱常)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 [註 136]
    기사년 : 1689 숙종 15년.
  • [註 137]
    갑술년 : 1694 숙종 20년.
  • [註 138]
    제(帝)가 방주(房州)에 있었던 것 : 이는 당(唐)나라 고종(高宗)의 아들인 중종(中宗)의 모후(母后) 측천 무후(則天武后)가 황제 노릇을 하면서 아들 중종을 균주(均州)와 방주(房州)에다 금고(禁錮)시켰던 고사(故事)를 인용한 것으로, 여기에서는 숙종 15년(1689) 기사 환국(己巳換局) 때 숙종의 계비인 인현 왕후가 희빈(禧嬪) 장씨(張氏)의 무고로 폐서인(廢庶人)되었다가 숙종 20년(1694) 갑술 옥사(甲戌獄事)로 복위(復位)된 일을 비유한 것임.
  • [註 139]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上詣安國洞 仁顯王后遜位時私第, 承旨趙榮進曰: "臣兒時, 聞臣母之言, 今見聖后所御之室, 如所聞矣。" 上曰: "己巳之於甲戌, 卽六年之久, 而有若帝在房州。" 上曰: "予於昨年, 奉覽手筆, 復見六年所御寢室, 庶無餘憾。" 命召入閔氏諸人及聖后親屬, 名其室曰感古堂, 以御筆, 題其額, 使之鐫揭。 上曰: "予之誕降, 適在甲戌, 乃聖后復位之歲也。 以此之故, 自辛丑至于今日, 而一種之類, 尤於予甘心矣。" 上命趙榮進特除漢城右尹, 諸人皆賜賫有差, 故縣監閔鎭永妻, 賜以衣資食物。 歷拜毓祥宮, 路傍見忠愍公 李鳳祥家旌門, 命遣禮官致祭。

【史臣曰: "趙榮進, 以聖后近屬, 謂以知其故事, 自爲先導, 指某室曰。 此乃聖后之所御, 而蓋聞閔氏傳家之言, 則與榮進指導者, 一切相反。 人臣告君, 不敢虛謾爲辭, 而乃敢强其不知, 甘自陷於誣罔之科, 雖由是擢華秩固寵靈, 其於一世之嗤點, 獨不愧乎?"】


  • 【태백산사고본】 67책 97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68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비빈(妃嬪)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윤리-강상(綱常)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