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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96권, 영조 36년 12월 11일 신사 1번째기사 1760년 청 건륭(乾隆) 25년

건명문에 나가 조참을 행하고, 이수봉·홍상직·유서오를 파직시키다

임금이 건명문(建明門)에 나아가서 조참(朝參)을 행하였다. 임금이 좌의정 이후(李)에게 이르기를,

"주(周)나라에는 삼공(三公)·삼고(三孤)240) 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만 한 상신(相臣)이 있을 뿐이니, 이와 같고서도 과연 나라가 되겠는가?"

하니, 이후가 말하기를,

"비록 성상의 하교가 아니라 하더라도 신이 어찌 신의 죄가 이에 이른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하고, 인하여 죄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사람이 사람으로 된 것은 팔·다리와 귀·눈이 있어서인데 나라에 귀와 눈이 없으면 나라가 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대각(臺閣)은, 크게는 극진한 말과 바른 의논을 다하지 못하고 작게는 관사(官師)가 서로 경계하지 아니하면서 조금만 견책(譴責)이 있으면 스스로 이르기를, ‘곧은 말을 하다가 견책을 입었다.’고 하니, 그 임금된 자가 어찌 어렵지 아니하겠는가? 경년(頃年)에 공묵합(恭默閤)에서 정기탕(正氣湯)을 복용할 때에 내가 말하기를, ‘국가의 일과 백성의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는데, 이 하교를 듣고서 옛 버릇을 고치지 아니하는 자는 하늘이 밝게 임할 것이다."

하였다. 이후가 말하기를,

"지금 세도(世道)가 비록 깊이 염려할 것은 없을지라도 그 싹이 나타나는 것을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싹이라는 것은 봄이 되면 반드시 자라는 것인데 어찌 염려할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이후가 말하기를,

"이조 판서를 가까스로 이미 처분하였는데 당(黨)을 없애는 방법은 오직 전관(銓官)을 칙려(飭勵)하는 데 있습니다."

하였고, 우의정 민백상(閔百祥)이 말하기를,

"싹이 나는 것은 정한 곳이 없으며 전관(銓官)은 아침에 변하고 저녁에 바뀌는데 만약 오로지 전조(銓曹)에게 있으면 없애기가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였다. 집의 이수봉(李壽鳳)이, 산림(山林)의 선비를 초치하여 주연(胄筵)과 세손(世孫)의 강학(講學) 때에 출입하도록 하기를 청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진달한 바가 비록 옳으나 전의 임무에 능히 직책을 다하지 못하였고 앞 연석(筵席)에서 모호(糢糊)하고 구차한 짓을 하였으니 파직하라."

하였으니, 대저 이수봉이 이 전에 오래 궁료(宮僚)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평 이창임(李昌任)이 정언 홍상직(洪相直)을 체차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대저 이창임이 ‘오늘날 신하가 누가 당심(黨心)이 있겠느냐?’는 말로써 아뢰니, 임금이 여러 대간(臺諫)에게 물었는데 홍상직이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으므로 그 언의(言議)가 흐리멍덩함으로써 이창임이 체차하기를 청한 것이었다. 지평 남현로(南玄老)가, ‘이창임·오봉원(吳奉源)이 오늘 연중(筵中)에서 「음붕(淫朋)」 두 글자로 진달한 것은 사체가 미안하다.’는 까닭으로써 모두 추고(推考)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대신(大臣)에게 가부(可否)를 정하게 하라.’고 말하자, 민백상이 남 현로의 말이 전후가 모순(矛盾)된다는 까닭으로써 추고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모순된다는 배척을 입었으니, 대직(臺職)에 머물기 어렵다. 체차(遞差)함이 마땅하다."

하였다. 부제학 서명응(徐命膺)이 장령(掌令) 유서오(柳敍五)의 직(職)을 파면하기를 청하였다. 대저 유서오근수법(跟隨法)241) 을 거듭 엄하게 하기를 청하였는데 자질구레한 말이 많으므로 서명응이 외설(猥屑)함으로써 파직을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인하여 명하기를

"부제학도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사체가 그렇지 아니하니, 서명응을 파직하라. 일은 같은데 신칙함을 다르게 할 수 없으니 그 나머지 유신(儒臣)도 아울러 파직하라."

하였다. 임금이 이창임(李昌任)에게 녹비(鹿皮)를 특별히 하사하였으니, 그 말이 매우 절실(切實)한 때문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66책 96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4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註 240]
    삼고(三孤) : 삼공은 주대(周代)의 가장 높은 세 가지의 벼슬 즉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를 일컫고, 삼고는 삼공 다음으로 소사(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의 세 가지 벼슬을 일컬음.
  • [註 241]
    근수법(跟隨法) : 관원을 따라다니는 관아의 하례에 관한 지침과 법규.

○辛巳/上御建明門, 行朝參。 上謂左議政 曰: "有三公三孤, 而今只有一相, 如此而其果爲國乎?" 曰: "雖微聖敎, 臣豈不知臣罪之至此?" 仍請罪。 上曰: "人之爲人, 以股肱耳目也, 國無耳目, 其可爲國乎? 今之臺閣, 大不能於極言竭論, 小不屑於官師相規, 少有譴責, 則自謂‘直言而被摧折’, 爲其君者, 豈不難乎? 頃年恭默閤服正氣湯時, 予以爲‘其如國事民生何哉’, 聞此下敎, 而不革舊習者, 蒼天照臨矣。" 曰: "卽今世道, 雖無深慮, 其萌芽之已現者, 則不可不察也。" 上曰: "萌芽者, 當春而必長, 豈非可慮乎?" 曰: "吏判纔已處分, 而祛黨之道, 惟在飭勵銓官也。" 右議政閔百祥曰: "萌芽生無定處, 銓官朝變夕改, 而若專在銓曹, 則芟之何難也?" 執義李壽鳳, 請招致山林之士, 使之出入於冑筵及世孫講學時, 上曰: "所陳雖是, 不能擧職於前任, 糢糊苟且於前筵, 罷職。" 蓋壽鳳, 前此久居於宮僚故也。 持平李昌任, 請遞正言洪相直, 上。 從之。 蓋昌任, 以今日臣子, 誰有黨心? 仰奏, 上, 下詢於諸臺相,直以不知仰對, 昌任以其言議朦朧請遞。 持平南玄老, 以李昌任吳奉源, 今日筵中, 以淫朋二字仰陳, 事體未安, 請幷推考。 上曰: "可否於大臣," 百祥玄老之言, 前後矛盾, 請推。 上曰: "旣被矛盾之斥, 難帶臺職, 遞差宜矣。" 副提學徐命膺, 請罷掌令柳叙五之職。 蓋叙五, 請申嚴跟隨法, 而語多零瑣, 命膺以其猥屑請罷, 上從之。 仍命曰: "副學等, 是不愜于心者也。 事體不然, 徐命膺罷職。 不可事同飭異, 其餘儒臣, 幷罷職。" 上特賜李昌任鹿皮, 以其言甚切實也。


  • 【태백산사고본】 66책 96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4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