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현당에서 주강을 행하다. 우의정 민백상이 충청·전라도의 진휼에 대해 건의하다
임금이 경현당에 나아가 주강(晝講)하여 《중용》을 강하였다. 부제학 서명응(徐命膺)이 말하기를,
"마음의 허령(虛靈)에 대하여 선유(先儒)의 변설(辨說)이 많은데, 허(虛)는 이(理)에 속하고 영(靈)은 기(氣)에 속하기 때문에 천지 사이의 물건이 속이 빈[中虛] 것은 모두 신령한 것이니, 인심(人心)으로써 말하건대 밖은 둥글고 방촌(方寸)226) 은 비었기 때문에 능히 허령(虛靈)한 것입니다. 심지어 연적(硯滴)이 조석(潮汐)을 지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은 모두 밖은 둥글고 속이 빈 이치이니, 부옹(釜瓮)227) 은 뚜껑이 없기 때문에 조석을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선유(先儒)의 학설은 오직 정(程)·주(朱)228) 외에는 모두 취할 것이 없다. 거개 이같은 이치만 강구하고 방심(放心)을 수습(收拾)하지 않는 자가 많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본디 스스로 밝으나 물욕(物慾)의 찌꺼기가 모두 이에 섞여서, 비유하건대, 수정(水晶) 그릇에 물을 담으면 맑고 먹물을 담으면 검은 것과 같다. 오직 마땅히 그 방심을 수습하여 찌꺼기가 없도록 하는 것이 가하다. 어찌 한갓 이기(理氣)의 심묘(深妙)한 것만 논하고 실공(實功)을 구하지 아니하겠는가? 부옹(釜瓮)이 뚜껑이 없어서 조석(潮汐)을 짓지 못한다고 한다면 바다는 어찌 일찍이 뚜껑이 있었는가?"
하매, 서명응이 말하기를,
"바다는 하늘로 뚜껑을 삼습니다."
하자, 특진관(特進官) 남태제(南泰齊)가 말하기를,
"그러면 동해(東海)는 어찌하여 조석(潮汐)이 없습니까? 이 이치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같은 것은 강구할 필요가 없고 인심의 어려운 것은 사욕(私慾)을 이겨 없애는 것이다."
하였다. 인하여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기를 명하였다. 우의정 민백상(閔百祥)이, 충청 감사의 장본(狀本)으로써 재해가 우심한 열 세 고을과 그 다음 두 고을의 진휼곡(賑恤穀)은 영진곡(營賑穀)과 자비곡(自備穀) 8천 석을 먼저 획급(劃給)하기를 청하고, 전라 감사 장본으로써 영암(靈巖)·진도(珍島)·해남(海南)의 전선(戰船)의 저치미(儲置米)는 을해년229) ·병자년230) 양년(兩年)의 미봉(未俸)이 6천 98석인데, 매년 징보(徵補)를 3백 석으로 표준하여 3백 석을 수봉하지 못한 수령은 해유(解由)에 구애(拘礙)하기를 청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6책 96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2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군사-병참(兵站) / 구휼(救恤) / 사상-유학(儒學)
- [註 226]방촌(方寸) : 마음.
- [註 227]
부옹(釜瓮) : 솥과 항아리.- [註 228]
○上御景賢堂, 晝講《中庸》。 副提學徐命膺曰: "心之虛靈, 先儒之辨說多矣, 而虛屬理, 靈屬氣, 故天地間物, 中虛則皆靈, 以人心言之, 外圓而方寸虛, 故能虛靈也。 至若硯滴之能作潮汐者, 莫非外圓中虛之理, 釜甕則無蓋, 故不能作潮汐也。" 上曰: "先儒之說, 惟程 朱外, 皆不可取也。 率多只究此等理, 而不求其放心者耳。 人心本自瑩然, 而物慾査滓, 皆雜之, 比之水晶器, 盛水則淸, 盛墨則黑也。 惟當求其放心, 而使無査滓可也。 豈可徒論理氣之深妙, 而不求實功也哉? 釜甕以無蓋, 不能作潮汐, 則海何嘗有蓋?" 命膺曰: "海則以天爲蓋。" 特進官南泰齊曰: "然則東海何無潮汐乎? 此理亦不可信也。" 上曰: "不須講究此等處, 而人之所難者, 克祛私慾也。" 仍命引見大臣備堂。 右議政閔百祥, 以忠淸監司狀本, 仰請尤甚災邑十三, 其次兩邑賑穀, 以營賑自備穀八千石, 爲先劃給, 以全羅監司狀本, 靈巖 珍島 海南戰船儲置米, 乙丙兩年未捧六千九十八石, 每年以徵補三百石爲準, 未捧三百石, 守令解由拘礙。
- 【태백산사고본】 66책 96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2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군사-병참(兵站) / 구휼(救恤) / 사상-유학(儒學)
- [註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