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현당에 나가 유신 6인에게 어필과 찬품을 내리다
임금이 경현당에 나아가서 유신(儒臣)을 불러 보고 다시 어필(御筆)로 ‘서궐임서 남두학사(西闕臨署南斗學士)’ 여덟 글자를 써서 내려 주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예전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를 이십팔장(二十八將)에 비하였는데, 지금의 유신(儒臣)은 여섯 사람이기 때문에 남두(南斗) 여섯 별에 비한 것이다."
하니, 유신이 감히 감당할 수 없다는 뜻으로써 우러러 진달하자, 임금이 남량(南樑)으로 고쳐 써서 사롱(紗籠)하여 하사하고 또 찬품을 내려 주었다. 어필(御筆)로 써서 내리기를, 정광한(鄭光漢)에게는 ‘동명의 방손으로 이름이 화현에 올랐다.[東溟傍孫名登華顯]’라고 하였고, 서명천(徐命天)에게는 ‘부자가 옥당이고 전후에 경악이다.[父子玉署前後經幄]’라고 하였으며, 김화진(金華鎭)에게는 ‘오늘날 전당(殿堂)에서 한자리를 하니 너희 아비를 추사(追思)하게 된다.[今日一堂追思爾父]’라고 하였고, 이담(李潭)에게는 ‘문정의 후손으로서 나의 학사가 되었다.[文靖之後 爲予學士]’라고 하였으며, 정원달(鄭遠達)에게는 ‘문충의 아들이요 정간의 손자가 된다.[文忠之子貞簡之孫]’라고 하였고, 정만순(鄭晩淳)에게는 ‘두 숙부를 계승하여 수조(守操)하는 마음이 가상하다.[能繼兩叔操心可尙]’라고 하였으며, 김응순(金應淳)에게는 ‘선원의 후손으로 그 충성을 계승하라.[仙源之後宜繼其忠]’고 하였고, 임준(任㻐)에게는, ‘전후의 홍문관이 한 집에 네 사람이다.[前後弘文一門四人]’라고 하였다. 인하여 하교하기를,
"오늘의 일은 늙은 나이에 세 번 강(講)한 빚을 갚는 것이다. 이로써 찬품을 내리니 돌아가서 집에 가져다 주고 입직하는 자는 문한(門限)184) 이 되기 전에 도로 들어오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또 부제학 정실(鄭實)에게 써서 주기를, ‘옛 정승의 아들로 염아함이 가상하다. 네가 시골에 있으나 일체로 반사한다.[古相之子恬雅可尙惟爾在鄕一體頒賜]’라고 하였다. 인하여 하유(下諭)하기를,
"사람됨이 개결(介潔)하여 이 뜻을 하유하면 스스로 마땅히 올라올 것이다."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유 봉조하(兪奉朝賀)는 경자년185) 유신이니, 특별히 옥서 어제(玉署御製)를 간인하여 내려 주기를 명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6책 9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4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예술-미술(美術)
○上御景賢堂, 召見儒臣, 復以御筆, 書賜‘西闕臨署南斗學士’八字。 上曰: "古以二十八宿, 比二十八將, 今者儒臣, 乃六人, 故比之南斗六星矣。" 儒臣仰陳不敢當之意, 上改書以南樑紗籠以賜之, 又賜饌。 以御筆, 書賜鄭光漢曰, ‘東溟傍孫, 名登華顯’, 徐命天曰, ‘父子玉署, 前後經幄’, 金華鎭曰, ‘今日一堂, 追思爾父,’ 李潭曰: ‘文靖之後, 爲予學士’, 鄭遠達曰, ‘文忠之子, 貞簡之孫’, 鄭晩淳曰, 能繼兩叔, 操心可尙’。 金應淳曰。 ‘仙源之後, 宜繼其忠’, 任㻐曰。 ‘前後弘文, 一門四人’。 仍敎曰:
"今日之擧, 乃酬暮年三講之債也。 以此賜饌, 歸遺其家, 而入直者趁門限還入可也。" 又書賜副提學鄭實曰, ‘古相之孫, 恬雅可尙, 惟爾在鄕, 一體頒賜’。仍下諭曰: "爲人介潔, 而諭此意, 則自當上來。" 又敎曰: "兪奉朝賀, 庚子儒臣也, 特命印賜玉署御製。"
- 【태백산사고본】 66책 9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4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예술-미술(美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