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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95권, 영조 36년 4월 10일 갑신 2번째기사 1760년 청 건륭(乾隆) 25년

유척기가 준천 공사의 득이 없음을 아뢰자 물러가라 하고 석강을 열다

임금이 봉조하 유척기(兪拓基)를 소견하고 준천 공사가 잘하는 일인지의 여부를 물었는데, 유척기가 말하기를,

"준천을 하여야 한다는 의논은 신이 늘 주장하여 왔습니다마는, 다만 모래를 운반하는 공역이 너무 커서 이를 어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여러 만 명의 인부와 만여 냥의 재정을 들인다면 모래를 운반할 수는 있겠으나, 지금 이 모래를 모두 천변(川邊)에 쌓아 두거나 길 위에 깔 경우, 모래는 흙과 달라 장마가 져서 냇물이 넘치면 천변에 쌓아 둔 모래가 저절로 무너져 내릴 수 있고 또 길 위에 깔아 놓은 것도 모두 내로 흘러 들어갈 것이니, 이제 비록 준천을 하더라도 내가 금방 다시 막히고 말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망연 자실한 모양으로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지혜로운 자가 보면 지혜롭다고 하고 어진 자가 보면 어질다고 하는 법인데, 경은 말하기를 좋은 일이 못된다고 하겠으나 나는 말하기를 좋은 일이라고 하겠다. 이 뒤로는 단 한 삽도 대지 않아도 백년을 안심할 수 있을 것인데, 경은 수작에 방해가 되니, 그만 물러가라."

하고, 이어 석강을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6책 95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건설-토목(土木)

○上召見奉朝賀兪拓基, 問濬川善否, 拓基曰: "川渠疏濬之論, 臣常主之, 惟其運沙之役巨, 以是爲難。 以累萬名役夫, 萬餘緡錢財, 足以運沙, 而今皆築之川傍, 布之路上, 則沙石非如土壤, 潦水之至, 川渠漲溢, 則川傍之築, 自可崩頹, 路上之布, 又皆流入, 今雖疏濬, 卽復湮塞矣。" 上憮然良久曰: "智者見之謂之智, 仁者見之謂之仁, 以卿言之謂之不善矣。 以予言之謂之善矣。 今後不煩一鍤, 可期百年, 卿病妨於酬酢, 其退去也。" 仍行夕講。


  • 【태백산사고본】 66책 95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건설-토목(土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