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일에 촛불을 올리는 것과 교년일의 행사를 혁파토록 하교하다
임금이 하교하기를,
"옛부터 나례(儺禮)198) 가 있었으니, 이것은 공자(孔子)께서 ‘시골 사람들이 나례를 〈행할 때에는〉 조복(朝服)을 입고 섬돌에 서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이 예(禮)는 주(周)나라 때부터 있었다. 지난 갑술년199) 에 제거하도록 명하였고, 또 춘번(春幡)과 애용(艾俑)200) 의 등속이 있어 그 유래가 오래 되었는데, 석년(昔年)에 역시 제거하였으니, 아! 거룩하도다. 그러나 단지 세말(歲末)에 행하는 정료(庭燎)201) 가 있는데, 한갓 공인(貢人)에게 폐단을 끼칠 뿐만이 아니라 푸른 대나무를 사용하였다가 일시에 태워버리므로 내가 역시 지나간 해의 성의(盛意)를 따라 그것을 제거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교년(交年)202) 과 경신(庚申)203) 같은 것은 본래의 일을 알지 못하여 승선(承宣)에게 명하여 상고(詳考)하도록 하였더니, 비록 고문(古文)에 있었으나 모두 정도(正道)에 어긋나 부엌신에게 아첨하는 데204) [媚竈]에 가깝다. 옛날에 조변(趙抃)205) 은 하루 동안 행한 바를 향을 피우고 하늘에 고하였다고 하는데, 혹 이런 뜻을 모방하여 일년 동안에 행한 바를 가지고 하늘에 제사하고 고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가하겠지만, 만약 날마다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옥루(屋漏)206) 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어찌 신(神)에게 기도한 일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비록 부엌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하더라도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것은 복(福)을 구하기를 사특한 데 하지 아니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경신(庚申)에 이르러서는 주공(周公)이 앉아서 아침이 되기를 기다린 뜻으로써 잠을 자지 아니한다면 어찌 특별히 경신일(庚申日)뿐이겠는가? 더러는 두려워하여 과실을 사뢴다 하더라도 역시 부엌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뜻일 것이다. 설혹 그 밤에 고하여 면한다 하더라도 날마다 감림(監臨)함이 여기에 있으니 내 마음의 선(善)하고 불선(不善)함은 저 푸른 하늘 아래에서 도망하지 못할 것이며, 한갓 정도에 어긋날 뿐만이 아니라 ‘성(誠)’의 글자에도 매우 흠이 되는 것이다. 아! 《주례(周禮)》에 있는 바의 나례(儺禮)도 지나간 해에 오히려 제거하도록 명하였는데, 더구나 삼대(三代) 이후의 오하(吳下)207) 의 풍속을 버리지 아니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이후로는 경신일에 촛불을 올리는 것과 교년일(交年日)에 거행하는 일은 모두 그만두게 하여 내가 정도를 지키며 지나간 해를 체득하는 뜻을 보이고 한결같이 오하(吳下)의 비루한 풍속을 씻어버리도록 하라. 그리고 현재 부효(浮曉)하고 조경(躁競)함이 이와 같으니, 이런 등속의 사람이 그 과실을 두려워하는 바가 어찌 특별히 이 두 날뿐이겠는가? 3백 60일이 모두 경신일일 것이다. 이 구속(舊俗)을 없애는 것도 또한 말세(末世)를 힘쓰도록 하는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5책 9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註 198]나례(儺禮) :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궁중이나 민가에서 마귀와 사신(邪神)을 쫓아낸다는 뜻으로 베풀던 의식으로서, 악귀(惡鬼)를 쫓는 외에 차차 칙사(勅使)의 영접, 임금의 행차(行次), 감사(監司)의 영접 등에 광대의 노래나 춤을 곁들여 오락으로 전용되었음.
- [註 199]
갑술년 : 1694 숙종 20년.- [註 200]
애용(艾俑) : 요악한 기운을 쫓는다는, 쑥으로 만든 인형.- [註 201]
정료(庭燎) : 궁정(宮庭)에 설치하여 행하는 횃불 놀이.- [註 202]
교년(交年) : 음력 12월 24일을 말함. 소절야(小節夜)·소년야(小年夜)라고도 하는데, 이 날은 잠을 자지 않고 집집마다 부엌신에게 제사를 지내었음. 교년회(交年會).- [註 203]
경신(庚申) : 경신일(庚申日)에 자지 않고 다음날을 기다리는 행사. 곧 낮의 신각(申刻)에서 밤의 신각까지 기다림. 이 날은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안심하고 있는 틈을 엿보아 악사(惡事)를 천제(天帝)에게 밀고(密告)한다고 하여 그런 빈큼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 함. 경신일을 꺼리고 싫어하는 도교(道敎)에서 나온 신앙. 경신회(庚申會).- [註 204]
부엌신에게 아첨하는 데 : 《논어(論語)》 팔일편(八佾篇)에 왕손 가(王孫賈)가 묻기를, "오신(奧神)에게 잘 뵈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신(竈神)에게 잘 뵈는 것이 이롭지 않겠는가?" 하매, 공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조차 없다.[獲罪於天無所禱也]"고 한 내용을 인용(引用)한 것으로 왕손 가가 권신(權臣)인 자기에게 아부(阿附)할 것을 넌지시 바라자, 공자가 진리(眞理)를 들어서 거절한 고사(故事)임.- [註 205]
○上, 下敎曰:
"古有儺禮, 此孔聖所以‘鄕人儺朝服而立於階者也’, 此禮自周有之。 而昔於甲戌命除之, 亦有春幡艾俑之屬, 而其來久矣, 昔年亦除之, 猗歟盛哉。 只有歲末庭燎, 而非徒貽弊貢人, 有用靑竹, 一時燎焉, 故予亦遵昔年盛意, 其命去之。 而猶於交年庚申, 莫知本事, 命承宣而詳考, 雖有古文, 俱爲不經, 近於媚竈也。 昔趙抃, 以一日所爲, 焚香告天, 或倣此意, 將一年所爲, 祭而告也, 則其猶可也, 若恒日戒懼, 不愧屋漏, 則有何禱神之事? 不然, 雖祭其竈, 何益之有哉? 此非求福不回者也。 至於庚申, 以周公坐而待朝之意, 不眠則奚特庚申日乎? 或恐白過, 亦祭竈之意也。 設或免乎其夜之告, 日監在玆, 吾心之善不善, 莫逃於蒼蒼, 非徒不經。 大有欠於誠字, 噫! 周禮所存儺禮, 昔年猶命除之, 況三代後吳下風俗, 不去而何? 今後庚申日進燭, 交年日擧行事, 一幷置之, 以示予守經體昔年之意, 一洗吳下之陋風焉。 目今浮嘵躁競若此, 此等之人, 其所悚過, 奚特兩日? 三百六十日, 皆庚申也。 祛此舊俗, 亦勵末世焉。"
- 【태백산사고본】 65책 9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註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