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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94권, 영조 35년 9월 20일 정묘 3번째기사 1759년 청 건륭(乾隆) 24년

희정당에서 주강을 열고, 부제학 조명정의 진달에 의해 내린 윤음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주강(晝講)하여 《중용(中庸)》을 강하였다. 부제학 조명정(趙明鼎)이 또 소과(小科)에 학례강(學禮講)161) 의 일로써 우러러 진달하자, 임금이 마침내 윤음(綸音)을 내리기를,

"자양 주부자(紫陽朱夫子)162) 의 소학 제사(小學題辭)에 ‘사람에게 물뿌리고 쓸며 응대하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절차와,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친구와 친하는 도리를 가르치도록 한 것은 모두 몸을 닦고 집을 가지런히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바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어찌 말하지 않았던가? 이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몸을 닦고 집을 가지런히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근본은 곧 물 뿌리고 쓸며 응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학(小學)》을 강하도록 권장하는 하교에 일찍이 이미 유시한 것이 많았으나 그 성과가 막연하였다. 그러니 이때를 인하여 강(講)을 권장하지 않으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이 뒤로는 대체로 소과(小科)의 초시(初試)를 본 뒤에는 조흘 예강(照訖禮講)163) 을 없애고 대사성으로 하여금 초시(初試)를 볼 여러 유생들에게 시강(試講)을 하되 《소학》의 해석은 제외하고 배송(背誦)하여 조(粗) 이상을 뽑고, 한결같이 대과(大科)의 삼경(三經) 중에 한 책을 자원하여 강하는 예에 의거하도록 하라. 아! 사대부의 자식으로서 《소학》을 읽지 아니하면 어떻게 어버이를 섬기고 임금을 섬기겠으며, 선비의 옷을 입고 유건(儒巾)을 쓰고서 한 권의 경서(經書)도 읽지 아니하고 또한 무슨 마음으로 청현(淸顯)에 뜻을 두겠느냐? 지금 이 대·소과(大小科)에 대한 윤음(綸音)을 늙어서 혼망한 말이라고 하지 말라. 그 의도는 실제로 근본을 단정히 하는 것이다. 비록 그러나 법이 오래되면 저절로 해이해지는 것이니, 법을 베푸는 처음에는 엄하게 과조(科條)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예조 판서로 하여금 대신(大臣)에게 나아가 의논하고 절목(節目)을 만들어서 계하(啓下)164) 하도록 하라. 그리고 대과(大科) 중에서 바로 승륙(陞六)되는 자에 대해서 분관(分館)할 때에는 간섭(干涉)하지 말고, 이 무리들을 친시(親試)할 때에 만약 잘하지 못하면 청현직에 천거(薦擧)하지 말도록 하는 것도 절목 중에 또한 더 보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특진관(特進官) 박필간(朴弼榦)이 소매 속에서 한 책자를 꺼내어 올렸는데, 이름은 《춘추대의(春秋大義)》라 하였고, 장주(莊周)165)왕통(王通)166) 의 말을 잡되게 인용하였으며, 대체 도리에 어긋났으므로 임금이 진헌(進獻)하는 의리가 없다는 것으로 여겨 도로 돌려주도록 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가 늙어서 정신이 혼미하였음을 비웃었다.


  • 【태백산사고본】 65책 94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註 161]
    학례강(學禮講) : 강서(講書) 시험의 한가지로 생원시·진사시 등 소과(小科)의 초시(初試) 합격자가 복시(覆試)에 앞서 《소학》과 《주자가례》를 배강(昔講)하는 것.
  • [註 162]
    자양 주부자(紫陽朱夫子) : 주희(朱熹).
  • [註 163]
    조흘 예강(照訖禮講) : 과거를 보려고 하는 유생(儒生)에게 조흘(照訖)을 마친 다음에 《소학》을 외우게 하던 일. 성균관에서 이 조흘강에 합격한 자에게 조흘첩(照訖帖)을 주어 과거를 보게 하였음.
  • [註 164]
    계하(啓下) : 임금의 재가를 받음.
  • [註 165]
    장주(莊周) : 장자(莊周).
  • [註 166]
    왕통(王通) : 문중자(文中子).

○上御熙政堂, 晝講《中庸》。 副提學趙明鼎, 又以小科學禮講事今仰陳, 上遂下綸音曰:

"紫陽朱夫子 《小學》題辭, 豈不云乎, 敎人以灑掃應對進退之節, 愛親敬長, 隆師親友之道, 皆所以爲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本? 以此觀之, 修齊治平之本, 卽灑掃應對也。 勸講《小學》之敎, 曾已多諭, 其效漠然。 因此時不爲勸講, 更待何時? 此後凡於小科初試後, 除照訖禮講, 令大司成, 試講初試諸生, 而以《小學》除釋背誦, 取粗以上, 一依大科自願三經例。 噫! 以士夫之子, 不讀《小學》, 其何以事親事君? 儒衣儒巾, 不讀一經, 抑何心志于淸顯? 今者大小科綸音, 莫曰言耄。 意實端本。 雖然法久則弛, 設法之初, 不可不嚴立科條。 其令宗伯之臣, 就議大臣, 成節目啓下。 大科中直陞六者, 於分館其無干涉, 此輩親試時, 其若不能, 勿擧淸顯事, 節目中亦爲添補可也。" 特進官朴弼榦, 袖進一冊字, 名之曰《春秋大義》, 雜引莊周王通之語, 槪甚不經, 上以進獻無義, 還給, 時人, 笑其老耄。


  • 【태백산사고본】 65책 94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