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동정성을 범하다. 과거장에서 강경을 겸행하도록 한 윤음
달이 동정성(東井星)을 범하였다.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소견(召見)하였다. 임금이 조명정(趙明鼎)의 차자 내용을 가지고 대신에게 하문하자, 여러 대신들이 마침내 결의(決意)하고 강경(講經)을 겸행하도록 하니, 윤음(綸音)을 내리기를,
"과장(科場)의 폐단을 익숙히 들었는데, 나의 경우를 말한다면 비단 청금(靑衿)의 과실만이 아니라 부형된 자가 자제(子弟)들의 독서(讀書)하는 방법을 잘 가르치지 못한 소치이다. 시관(試官)은 공정한 도리로 선비를 선발하고 부형은 자제의 부정(不正)을 금한다면 또한 어찌 이러한 폐단이 있겠느냐? 어떤 사람은 면시(面試)를 청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대비(大比) 이외에는 절대로 선비를 뽑지 말아야 한다고 운운하였는데, 이른바 면시한 것은 도곡(陶穀)의 아들 장석(張奭)151) 이외에는 내가 들은 바가 없다. 늙어가는 나이에 어찌 차마 악착한 짓을 행하였겠는가? 이것은 근본을 단정히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경연(經筵)에서 간략하게 제도를 정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합문(閤門) 밖을 지나가기도 전에 홀연히 생각하니 한갓 광경만 아름답지 못할 뿐이 아니라 이것은 요행을 바라는 문을 열어 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오늘날 많은 선비들이 한 과장 속에서 제술(製述)할 글을 생각하고 강시(講試)에 응할 경전을 외운다면 이것은 두 가지로서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기에 반포하지 말도록 특별히 명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었다. 그것을 어찌 새로운 규칙이라고 하겠느냐? 이 뒤로는 명경과(明經科) 및 알성 시사(謁聖試士)와 관무재(觀武才) 유생 대거(儒生對擧) 이외에 증광 초시(增廣初試)를 행한 후에는 강(講)은 면제하고 삼경(三經) 중에서 한 책을 자원(自願)하게 하여 해석을 면제하고 배강(背講)하여 조(粗)152) 이상을 뽑고, 중시 대거 정시(重試對擧庭試) 역시 이 예에 의거하여 행하도록 하고, 이외에 추비록 경과(慶科)가 조첩(稠疊)되더라도 매양 그 해 늦가을에 정시와 별시(別試)를 합설(合設)하되 반드시 초시(初試)를 한 뒤에 강경(講經)을 하도록 하며 9월 이후에는 아무리 나라에 경사가 있어도 절대로 재설(再設)을 하지 말고, 다음해 9월에 설행(設行)하되 역시 정규(定規)에 의거하여 시행할 것이며, 알성시의 경우는 나라의 문물 제도(文物制度)를 보는 것이니 선비를 뽑되 5인에 지나지 않도록 하고, 관무재 유생 정시와 중시 대거 정시는 모두 3인에 지나지 않도록 한다면, 이것이 근본을 단정히 하는 것이다. 비록 그러나 인재를 등용함에 종핵(綜核)153) 을 하지 아니하면 요행을 바라는 문을 어찌 막을 것이며, 조망(躁妄)한 풍습을 어찌 중지할 수 있겠는가? 이 뒤로는 방(榜)마다 추생(抽栍)154) 으로 그 재주를 시험하여 당연히 운각(芸閣)155) 에 분관(分館)156) 할 자 이외에는 비록 마땅히 괴원(槐院)157) 에 부속(附屬)할 자라 하더라도 능하지 못한 자는 마땅히 국자감(國子監)158) 에 부속시키고, 마땅히 국자감에 부속되었던 자라도 〈능한 자는〉 당연히 운각에 부속시키도록 할 테니, 이와 같이 하면 그 근본은 저절로 단정해질 것이고 그 조망함도 저절로 정지될 것이다. 이번의 하교는 명색은 비록 엄하나 그 뜻은 너그러운 것이다. 과장(科場) 중에서 효잡(淆雜)한 것 역시 세 글자의 제목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지금부터 뒤로는 제목(題目)을 써서 품지(稟旨)를 받되 특별히 잠(箴)·명(銘)·송(頌)은 제외하고 이 뜻을 일체(一體)로 하여 규식을 정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5책 94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0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과학-천기(天氣)
- [註 151]도곡(陶穀)의 아들 장석(張奭) : 도곡(陶穀)은 송나라 태조(太祖) 때 신평(新平) 사람으로, 예(禮)·형(刑)·호(戶) 삼부의 상서(尙書)를 역임하였음. 처음에 태조가 수선(受禪)할 적에 선문(禪文)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었는데, 도곡이 곁에 있다가 품안에서 꺼내 올리며 "벌써 만들어 놓았다."고 말하므로, 태조가 그를 좋지 않게 여겼음. 뒤에 그의 아들인 장석(張奭)이 과거에 오르게 되자 태조가 다시 명하여 전시(殿試)를 보게 하였는데, 이것이 전시의 시초라 함.
- [註 152]
조(粗) : 강서(講書)의 성적 등급(成績等級)의 제3위(第三位). 우등(優等)을 통(通), 중등을 약(略), 열등을 조(粗), 불합격을 불(不)이라고 함.- [註 153]
종핵(綜核) : 속속들이 치밀하게 밝힘.- [註 154]
추생(抽栍) : 추첨.- [註 155]
운각(芸閣) : 교관.- [註 156]
분관(分館) : 새로 문과(文科)에 급제한 사람을 승문원(承文院)과 성균관(成均館), 교서관(校書錧)의 관(館)에 배치시켜 권지(權知)라는 이름으로 실무를 익히게 하던 일.- [註 157]
괴원(槐院) : 승문원.- [註 158]
국자감(國子監) : 성균관.○乙丑/月犯東井星。 上御熙政堂, 召見大臣備堂。 上, 以趙明鼎箚語, 下詢大臣, 諸臣遂決意, 兼行講經, 下綸音曰:
"科場之弊, 其聞熟矣, 而予則曰此非但靑衿之過, 爲父兄者, 不能敎子弟讀書之致。 試官以公取士, 父兄禁子弟之不正, 亦焉有此弊? 或請面試, 或曰大比之外, 切勿取士云, 而所謂面試, 陶縠之子張奭之外, 予所罕聞。 暮年豈忍行齷齪之事? 而此非端本也。 故頃日筵中, 略略定制, 而諸臣未過閤外, 忽然思之, 非徒景象之不佳, 此開倖門之一道也。 今日多士, 一場之中, 思製述之文, 誦應講之經, 此二而導之也, 特命勿布者, 蓋此也。 其何新規? 此後明經科及謁聖試士, 觀武才儒生對擧外, 增廣初試後, 除講, 三經中自願一書除釋, 背講取粗以上, 重試對擧庭試, 亦依此例, 此外雖慶科稠疊, 每於其年季秋, 合設庭試別試, 必也初試後講經, 而九月之後, 雖有邦慶, 切勿再設, 翌年九月設行, 亦依定規, 謁聖則觀國之光, 取士無過五人, 觀武才儒生庭試重試對擧庭試, 俱不過三人, 此端本也。 雖然用人不綜核, 倖門何可杜, 躁風何可止乎? 此後每榜抽栍, 試其才, 應爲芸閣分館者外, 雖當付槐院者, 不能者當付國子, 當付國子者, 當付芸閣, 若此, 其本自可端, 其躁自可止。 今者下敎, 名雖嚴, 意則寬。 場中淆雜, 亦由乎三字之題, 今後則書題取稟, 特除箴銘頌, 此意一體定式。"
- 【태백산사고본】 65책 94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0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과학-천기(天氣)
- [註 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