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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90권, 영조 33년 11월 11일 기해 4번째기사 1757년 청 건륭(乾隆) 22년

밤에 신하들이 입시한 가운데 왕세자를 책망하고 전위하겠다고 하여 왕세자가 기절하다

이날 밤에 판부사(判府事) 유척기(兪拓基)·좌의정 김상로(金尙魯)·우의정 신만(申晩)·좌참찬 홍봉한 및 양사(兩司)의 장관(長官)과 유신(儒臣)이 모두 궐(闕) 안에서 기다렸다. 초경(初更)에 임금이 최복(衰服)을 입고 걸어서 숭화문(崇化門) 밖에 나와 노지(露地)에 엎드려 곡을 하고 동궁(東宮)도 역시 최복을 입고 뒤에 엎드려 있었으니, 숭화문은 곧 효소전(孝昭殿)의 바깥 문이었다. 대신(大臣) 이하가 앞에 나아가 엎드려 울면서 고하기를,

"전하께서 어이하여 이러한 거조를 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승지가 동궁의 하령을 가지고 와서 아뢴 데에 뉘우쳐 깨달았다는 말이있으므로 얼른 지나쳐 보고는 놀라고 기쁨을 금치 못하여 장차 경 등을 불러 자랑하고 칭찬하려고 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정신을 쏟은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동궁을 불러 묻기를, ‘옛날부터 허물을 뉘우치는 임금은 반드시 자기가 잘못한 곳을 나타나게 하기를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윤대(輪對)조서(詔書)279) 와 같이 한 다음에야 백성이 모두 믿을 것인데, 지금 네가 뉘우친 것은 어떤 일이냐?’고 하였으나, 동궁이 대략만 말하고 끝내 시원하게 진달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일제히 같은 소리로 말하기를,

"동궁께서 평일에 너무 엄하고 두려운 까닭에 우러러 말씀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빨리 위차(位次)로 들어가시어 신 등을 불러 조용히 하교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에 재전(齋殿)에 나아가 승지에게 전위(傳位)한다는 교지를 쓰라고 명하매, 승지가 붓을 던지고 죽어도 감히 못 쓰겠다고 아뢰자, 여러 신하들을 따라 들어오라고 명하고 다시 동궁을 입시하라고 명하였는데, 동궁이 나아와 부복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추회 막급(追悔莫及)하다고 일렀는데, 그 뉘우치는 내용을 말하지 않으니, 남의 이목(耳目)만 가린 것에 불과하다."

하고, 이어서 엄한 하교를 내리니, 동궁이 꿇어 엎드려 체읍(涕泣)하였다. 유척기가 말하기를,

"자제(子弟)를 가르치는 데는 귀천에 차이가 없으므로 시험삼아 여항(閭巷)의 일을 가지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형이 만일 엄위(嚴威)가 지나치면 자제가 두려워하고 위축되어 말하고 시봉(侍奉)하는 사이에 저절로 잘 맞지 않고 어긋남을 면치 못하며 혹은 심지어 그것이 질병으로 발전되기까지 하는데, 만일 자애과 온화함을 위주로 하여 도리를 열어 깨우쳐 준다면 은의(恩義)가 모두 온전하여지고 정지(情志)가 서로 믿음을 줄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엄위가 너무 지나치시기 때문에 동궁이 늘 두려움과 위축된 마음을 품고 있으니 응대(應對)하는 즈음에 머뭇거림을 면치 못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지금부터는 심기(心氣)가 화평하도록 힘쓰시고 만일 지나친 잘못이 있으면 조용히 훈계하여 점점 젖어 들도록 이끌어 주신다면, 하루 이틀 사이에 자연히 나아져가는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신만은 말하기를,

"가르쳐 깨우치게 하는 도리는 비유하자면 의원이 약을 쓰는 것과 같으니 어찌 한 첩의 약으로 효험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연달아 복용하여 그치지 않아야만 자연히 차도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홍봉한이 말하기를,

"동궁께서 평상시에도 입시하라는 명령만 들으면 두려워서 벌벌 떨며 비록 쉽게 알고 있는 일이라도 즉시 대답하지 못하였던 것은 대개 군부에게 기뻐함을 얻지 못하였고 너무 엄외(嚴畏)한 데에 연유하여 그러한 것입니다."

하고, 김상로는 말하기를,

"전하께서 이제부터 동궁을 자주 불러 일에 따라 가르쳐 인도하시어 몸을 안일하게 하지 못하게 하면 점점 성취할 것입니다."

하였다. 동궁이 물러나와 뜰에 내려가다가 까무러쳐서 일어나지 못하니, 유척기가 급히 의관(醫官)을 불러 진맥(診脈)하도록 청하였다. 그런데 맥도(脈度)가 통하지 않아 약을 넘기지 못하여 청심환(淸心丸)을 복용하게 하였더니, 한참 있다가 비로소 말을 통하였다. 홍봉한태복(太僕)280) 의 가교(駕轎)에 태워 안으로 들게 하자고 주청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90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66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註 279]
    조서(詔書) : 윤대는 서역(西域)의 소국(小國)의 이름. 한나라 무제(武帝) 때 이곳을 점령하여 흉노(匈奴)를 제압하고자 했는데, 말년에 와서 포기하였음. 곧 정화(征和) 4년(B.C.89)에 상홍양(桑弘羊)이 이곳을 개발하여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군사를 보내 지킬 것을 건의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무제는 왕년의 정벌(征伐) 정책이 백성을 피폐하게 만들었음을 뉘우치고 백성을 휴식시키고 농업에 전념해야 한다는 조서를 내렸음. 이를 윤대의 조서라고 함.
  • [註 280]
    태복(太僕) : 사복시.

○是夕, 判府事兪拓基、左議政金尙魯、右議政申晩、左參贊洪鳳漢及兩司長官ㆍ儒臣, 咸待于闕中。 初更, 上以衰服, 步出崇化門外, 露地伏哭, 東宮亦以衰服伏于後, 崇化門孝昭殿外門也。 大臣以下趨伏於前, 泣告曰: "殿下何爲作此擧也?" 上曰: "承旨持奏東宮下令, 有悔悟之語, 故驟看之, 不覺驚喜, 將召卿等誇美之, 細看則無精神所湊處。 故召問東宮曰, ‘自古悔過之君, 必顯言其病處, 如 輪對詔然後, 人皆信之, 今汝所悔者何事?’ 東宮略言之, 而終不洞陳矣。" 諸臣齊聲言: "東宮平日, 過於嚴畏, 故不能仰達。 伏望速就次, 召臣等從容下敎焉。" 上乃御齋殿, 命承旨書傳位之敎, 承旨閣筆曰, ‘死不敢書’, 命諸臣追入, 更命東宮入侍, 東宮進伏, 上曰: "汝旣云追悔莫及, 而不言所悔之事, 不過掩人耳目耳。" 因下嚴敎, 東宮跪伏涕泣。 拓基曰: "敎誨子弟, 無間貴賤, 試以閭巷言之。 父兄若過於嚴威, 則子弟畏憚惶蹙, 言語侍奉之間, 自不免齟齬, 或至轉成疾病, 若以慈和爲主, 開曉道理, 則恩義兩全, 情志交孚。 今殿下嚴威太勝, 故東宮常懷兢蹙, 應對之際, 不免趑趄。 伏乞從今務令心氣和平, 如有過差, 則從容訓戒, 漸漬誘掖, 一日二日, 自然有將就之效矣。" 曰: "敎誨之道, 譬如醫家用藥, 豈可以一貼責效乎? 連服不已, 自然差勝矣。" 鳳漢曰: "東宮常時若聞入侍之命, 則震恐戰慄, 雖易知之事, 不能卽對, 蓋緣不得於君父, 過於嚴畏而然矣。" 尙魯曰: "殿下從今頻召東宮, 隨事訓迪, 不使身體安逸, 則漸至成就矣。" 東宮退出, 下階昏窒不能起, 拓基請急召醫官診脈。 脈度不通, 藥不能下, 進服淸心丸, 良久始通言語。 鳳漢奏請以太僕駕轎入內, 上許之。


  • 【태백산사고본】 63책 90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66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