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영조실록89권, 영조 33년 6월 4일 갑자 2번째기사 1757년 청 건륭(乾隆) 22년

정성 왕후의 인산 의주

인산 의주(因山儀註)이다. 3월 초2일에 정성 왕후(貞聖王后)의 산릉(山陵)을 창릉(昌陵) 왼쪽 산등성이에 정하여 을좌 신향(乙坐辛向)으로 능혈(陵穴)을 마름질하고, 3월 19일 사시(巳時)에 역사를 시작하였다. 같은 달 30일 오시(午時)에 풀을 베고 흙을 팠으며, 5월 초2일 사시(巳時)에 금정(金井)을 열었는데, 능혈의 깊이는 8척(尺) 4촌(寸)이었다. 【영조척(營造尺)을 썼다.】 6월 초2일에 찬궁(欑宮)을 열고, 같은 달 초3일 축시(丑時)에 발인(發靷)하였다. 같은 달 초4일 축시에 산릉(山陵)의 찬궁을 열고 같은 날 진시(辰時)에 현궁(玄宮)에 내렸다. 시보(諡寶)와 시책(諡冊)은 5월 25일 사시(巳時)에 내입(內入)하였다가 같은 날 27일 진시에 내출(內出)하였고, 빈전(殯殿)에 증시(贈諡)는 같은 달 사시에 하였다. 명정(銘旌)은 같은 날 미시(未時)에 고쳐 썼다. 6월 초2일에 찬궁을 열었다. 왕세자가 최복(衰服)을 갖추고 〈곡(哭)하는〉 자리로 나아가 곡하니, 상식(尙食)이 향안(香案) 앞에 나아가 향을 올리고, 술잔에 술을 부어 영좌(靈座) 앞에 드렸다. 전언(典言)이 축문(祝文) 읽기를 마치자, 상식이 영좌와 전(奠)을 전내(殿內)로 옮겼다. 우의정 신만(申晩)이 꿇어앉아 아뢰기를, ‘삼가 좋은 때에 찬궁을 열게 되었습니다.’ 하자, 상전(尙傳)이 여러 내시들을 거느리고 찬궁을 걷어 치웠다. 상전이 수건으로 재궁(梓宮)을 닦고 관의(棺衣)를 덮으니, 내시가 영좌(靈座)와 영침(靈寢)에 휘장을 설치하기를 모두 처음과 같이 하였다. 6월 초4일에 정성 왕후(貞聖王后)의 장사를 지냈다. 하루 전에 견전제(遣奠祭)107) 를 의식대로 지냈다. 섭통례(攝通禮)가 영좌 앞에 나아가 어좌에서 내려와 여(轝)에 오르기를 계청(啓請)하였다. 내시가 혼백함(魂帛函)을 받들어 요여(腰轝)에 안치하고, 우주궤(虞主櫃)는 그 뒤에 안치하였다. 빈전(殯殿)의 문 밖에 이르러 여에서 내려 연(輦)에 올랐다. 섭통례가 재궁 앞에 나아가 순(輴)에 올리기를 계청하자, 좌의정 김상로(金尙魯)가 재궁을 마주 들 궁관(宮官)과 내시들을 거느리고 재궁을 받들어 윤여(輪轝)를 따라 순소(輴所)에 나아가서 소금저(素錦褚)로 덮으니, 내외(內外)가 모두 곡을 하였다. 내시가 삽(翣)108) 과 행장(行障)으로 재궁을 가리고, 명정(銘旌)을 든 사람이 먼저 행진하여 빈전의 문 밖에 이르니, 순에 올리고 외문(外門) 밖에 이르러 대여(大轝)에 올렸다. 의위(儀衛)가 인도하여 따르기를 의식대로 하였다. 요령[鐸]을 잡은 자가 요령을 흔들자, 궁인(宮人)이 말을 타고 곡하며 따르는데, 곡하는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영가(靈駕)가 숭례문(崇禮門) 밖에 이르러 개강(改杠)하여 문 밖으로 나가고, 또 개강하여 노제(路祭)를 지내는 곳에 이르니, 섭통례가 여 앞에 나아가 연에서 내려 여에 오르기를 계청하였다. 또 여에서 내려 영좌에 올리기를 계청하였다. 내시가 혼백함을 받들어 장전(帳殿) 가운데 안치하였다. 섭통례가 대여 앞에 나아가 조금 머물기를 계청하니, 유도 백관(留都白官)이 진향(進香)하고 노제를 의식대로 지냈다. 왕세자가 봉사(奉辭)하는 자리에 나아가 곡하며 슬픔을 다하였다. 섭통례가 영좌(靈座) 앞에 나아가 영좌를 내려 여(轝)에 올리기를 계청하였다. 또 여에서 내려 연(輦)에 올리기를 계청하고, 섭통례가 대여(大轝) 앞에 나아가 출발할 것을 계청하였다. 주정소(晝停所)에 이르러 예찬(禮饌)을 올리기를 조석전(朝夕奠)과 같이 하였다. 창릉(昌陵)의 홍살문[紅箭門] 밖에 이르러 섭통례가 혼백연(魂帛輦) 앞에 나아가 조금 머물기를 계청하니, 연을 멘 군사들이 연을 돌려 북향하여 욕석(褥席)에서 멈추었다. 조금 있다가 또 출발하기를 계청하였다. 대여가 이르니 역시 그와 같이 하였다. 대여가 출발하여 능소(陵所)에 이르니, 섭통례가 대여 앞에 나아가 여에서 내려 순(輴)에 올리기를 계청하였다. 정자각(丁字閣)에 이르니 또 순에서 내릴 것을 계청하였다. 좌의정 김상로(金尙魯)가 재궁을 마주 들 궁관(宮官)을 거느리고 재궁을 받들어 윤여(輪轝)를 따라 나아가 찬궁(欑宮) 안의 탑(榻) 위에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안치하였다. 섭통례가 혼백련 앞에 나아가 연에서 내려 여에 올리기를 계청하고, 정자각에 이르러 또 여에서 내려 영좌에 올리기를 계청하니, 내시가 혼백함(魂帛函)을 받들어 영좌에 안치하고, 우주궤(虞主櫃)는 뒤에 안치하고, 향안(香案)은 그 앞에 설치하고, 명정(銘旌)은 영좌의 오른쪽에 설치하였다. 또 시책(諡冊)·시보(諡寶)·애책문(哀冊文) 및 평상시 사용하던 인보(印寶)를 영좌의 왼쪽에 두고, 또 영침(靈寢)을 재궁의 동쪽에 설치하였다. 궁인이 자리에 나아가 곡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였다. 이날 천전의(遷奠儀)를 의식대로 행하였다. 섭통례가 영좌 앞에 나아가 여에 올라 길유궁(吉帷宮)으로 나아가기를 계청하고, 또 여에서 내려 영좌에 올리기를 계청하니, 내시가 혼백함을 받들어 영좌에 안치하였다. 섭통례가 또 재궁 앞에 나아가 순에 올라 현궁(玄宮)으로 나아가기를 계청하니, 우의정 신만(申晩)이 수건을 받들어 재궁을 닦았다. 좌의정 김상로(金尙魯)가 재궁을 받들어 순에 올리고, 순을 메는 군사가 순을 받들어 왼쪽으로 돌아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하여 현궁으로 나아가니, 궁인들이 모두 곡을 하였다. 순이 수도각(隧道閣)에 이르러 윤여(輪轝)로 재궁을 받들어 퇴광(退壙)의 산륜(散輪)109) 위에 올려 안치하고, 소금저를 제거하였다. 감싼 것이 제대로 풀어졌는가를 봉심(奉審)하고 녹로(轆轤)를 사용하여 퇴광 안의 윤여 위에 안치하니, 우의정 신만이 수건을 받들어 재궁을 닦고, 관의(棺衣)를 세 겹으로 덮고, 명정을 그 위에 두었다. 좌의정 김상로가 재궁을 마주 드는 궁관을 거느리고 재궁을 받들어 외재궁(外梓宮) 안에 안치하였다. 우의정 신만이 다시 관의와 명정을 정돈하였다. 국장 도감 제조 홍상한(洪象漢) 등이 보삽(黻翣)·불삽(黻翣)·화삽(畵翣)을 재궁의 양쪽 옆에 꽂았다. 영의정 이천보(李天輔)가 애책문(哀冊文)을 퇴광의 서쪽에 올리고, 증옥(贈玉)과 증백(贈帛)을 애책문의 남쪽에 올리니, 집의 심관(沈鑧)이 봉폐(封閉)한 것을 감시하였다. 우의정 신만이 아홉 번 삽질하여 흙을 덮었다. 지석(誌石)을 내리고 우주(虞主)를 세워 전례(奠禮) 행하기를 의식대로 하였다. 섭통례가 길유궁(吉帷宮) 앞에 나아가 어좌에서 내려와 여(轝)에 오르기를 계청하였다. 내시가 우주를 받들어 여에 안치하고, 혼백함(魂帛函)은 그 뒤에 두었다. 길유문 밖에 이르니 여에서 내려 연(輦)에 오르기를 계청하고, 의장(儀仗)이 앞에서 인도하였다. 창릉(昌陵)의 홍살문[紅箭門] 밖에 이르니 연을 돌려 북쪽을 향하여 욕석(褥席)에서 멈추고, 조금 있다가 출발하였다. 주정소(晝停所)에 이르러 예찬(禮饌) 올리기를 조석전(朝夕奠)과 같이 하였다. 도성문(都城門) 밖에 이르니, 왕세자가 지영(祗迎)하며 곡배(哭拜)하기를 의식대로 하고, 뒤따라 대궐로 돌아왔다. 우주연(虞主輦)이 종묘(宗廟)의 앞길에 이르니, 연을 돌려 북쪽을 향하여 욕석(褥席)에 멈추고, 조금 있다가 출발하였다. 혼전(魂殿)의 문 밖에 이르니, 섭통례가 연에서 내려 여에 올리기를 계청하였다. 혼전의 뜰 위에 이르니, 또 여에서 내려 영좌에 올리기를 계청하자, 내시가 우주를 받들어 영좌에 안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89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51면
  • 【분류】
    왕실(王室) / 도량형(度量衡)

  • [註 107]
    견전제(遣奠祭) : 발인(發靷) 때 문앞에서 지내는 제사.
  • [註 108]
    삽(翣) : 상여의 양 옆에 세우고 가는 제구.
  • [註 109]
    산륜(散輪) :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에 사용하는 둥근 나무 토막.

○因山儀註:

三月初二日, 定貞聖王后山陵於昌陵左岡, 以乙坐辛向裁穴, 始役三月十九日巳時。 斬草破土同月三十日午時, 開金井五月初二日巳時, 穴深八尺四寸。 【用營造尺。】 啓欑宮六月初二日, 發靷同月初三日丑時。 山陵啓欑宮同月初四日丑時, 下玄宮同日辰時。 諡、冊寶內入五月二十五日巳時, 內出同月二十七日辰時, 贈諡殯殿同日巳時。 改銘旌同日未時。 六月初二日啓欑宮。 王世子具衰服入就位哭, 尙食詣香案前上香, 酌酒奠于靈座前。 典言讀祝訖, 尙食遷靈座及奠於殿內。 右議政申晩跪啓, ‘謹以吉辰啓欑宮。’ 尙傳率諸內侍, 陞撤欑宮。 尙傳以巾拂拭梓宮, 覆以棺衣, 內侍設幄靈座、靈寢竝如初。 六月初四日葬貞聖王后。 前一日行遣奠如儀。 攝通禮進靈座前, 啓請降座陞轝。 內侍奉魂帛函, 安於腰轝, 虞主櫃置其後。 至殯殿門外, 降轝陞輦。 攝通禮進梓宮前, 啓請詣輴, 左議政金尙魯帥舁梓宮官及內侍, 奉梓宮, 從輪轝, 將詣輴所, 覆以素錦褚, 內外皆哭。 內侍以翣及行障, 障梓宮, 銘旌先行, 至殯殿門外, 陞輴至外門外, 陞大轝。 儀衛導從如式。 執鐸者振鐸, 宮人乘馬, 哭從不絶聲。 靈駕至崇禮門, 改杠出門外, 又改杠至路祭所, 攝通禮進轝前, 啓請降輦陞轝。 又啓請降轝陞座。 內侍奉魂帛函, 入安於帳殿中。 攝通禮進大轝前, 啓請少駐, 留都百官進香, 路祭如儀。 王世子就奉辭位, 哭盡哀。 攝通禮進靈座前, 啓請降座陞轝。 又啓請降轝陞輦, 攝通禮進大轝前, 啓請進發。 至晝停所, 進禮饌如朝夕奠。 至昌陵紅箭門外, 攝通禮進魂帛輦前, 啓請少駐, 擔士回輦, 北向停於褥席。 少頃又啓請進發。 大轝至, 亦如之。 大轝進發至陵所, 攝通禮進大轝前, 啓請降轝陞輴。 至丁字閣, 又啓請降輴。 左議政金尙魯帥舁梓宮官奉梓宮, 從輪轝進, 安於欑宮內榻上南首。 攝通禮進魂帛輦前, 啓請降輦陞轝, 至丁字閣, 又啓請降轝陞座, 內侍奉魂帛函, 安於靈座, 虞主置後, 設香案於其前, 設銘旌於靈座之右。 又設諡冊ㆍ寶、哀冊及平時印寶於靈座之左, 又設靈寢於梓宮之東。 宮人就侍位哭如初。 是日行遷奠如儀。 攝通禮進靈座前, 啓請陞轝詣吉帷宮, 又啓請降轝陞座, 內侍奉魂帛函, 安於靈座。 攝通禮又進梓宮前, 啓請陞輴, 卽玄宮, 右議政申晩奉巾拭梓宮。 左議政金尙魯帥舁梓宮奉梓宮陞輴, 擔士奉輴左回北首, 將卽玄宮, 宮人皆哭。 輴至隧道閣, 以輪轝奉梓宮, 進安於退壙散輪上, 去素錦褚。 奉審解裹, 用轆轤, 安於退壙內輪轝上, 右議政申晩奉巾拭梓宮, 乃以棺衣三重, 銘旌置其上。 左議政金尙魯帥舁梓宮官奉梓宮, 安於外梓宮內。 右議政申晩再整棺衣、銘旌。 國葬都監提調洪象漢等, 樹黼、黻翣及畫翣於梓宮兩傍後。 領議政李天輔奠哀冊於退壙之西, 奠贈玉、贈帛於哀冊之南, 執義沈鑧監封閉。 右議政申晩覆土九鍤。 下誌石, 立虞主, 行奠禮如儀。 攝通禮進吉帷宮前, 啓請降座陞轝。 內侍奉虞主, 安於轝, 魂帛置其後。 至帷門外, 啓請降轝陞輦, 儀仗前導。 至昌陵紅箭門外, 回輦北向, 停於褥席, 少頃進發。 至晝停所, 進禮饌如朝夕奠。 至城門外, 王世子祗迎哭拜如儀, 隨後還宮。 虞主輦至宗廟前路, 回輦北向, 停於褥席, 少頃進發。 至魂殿門外, 攝通禮啓請降輦陞轝。 至殿階上, 又啓請降轝陞座, 內侍奉虞主, 安於靈座。


  • 【태백산사고본】 63책 89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51면
  • 【분류】
    왕실(王室) / 도량형(度量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