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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89권, 영조 33년 2월 15일 정축 3번째기사 1757년 청 건륭(乾隆) 22년

일성위 정치달이 졸하자 곡반을 하고, 이를 만류한 삼사 신하를 체차시키다

이날 일성위(日城尉) 정치달(鄭致達)이 졸(卒)하였다. 예단(禮單)이 먼저 들어오고 조금 있다가 중궁전(中宮殿)이 승하하였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장차 곡반(哭班)에 나가려 하는데, 갑자기 좌의정과 우의정을 입시하도록 명하여 임금이 손을 잡고 말하기를,

"경들은 이 가슴속의 슬픔을 이해하여 한 번 덜 수 있게 하라."

하자, 좌의정 김상로(金尙魯)·우의정 신만(申晩) 등이 감히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고, 다만 곧바로 나아갔다가 일찍 환궁하라는 뜻을 아뢰고 물러났다. 이때 승정원과 삼사의 신하 및 영의정 이천보(李天輔)가 서로 잇달아 청대(請對)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이미 좌의정과 우의정에게 하교하였는데 어찌 이런 일을 하는가?"

하고, 인하여 승지를 입시하도록 명하였다. 승지 이최중(李最中)이 빨리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이렇게 망극(罔極)한 시기를 당하여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망극한 일을 하시려 합니까?"

하니, 임금이 잇달아 엄중한 하교를 내렸으나, 이최중이 눈물을 흘리며 더욱 힘껏 간쟁하였다. 임금이 진노(震怒)하여 이최중에게 물러나도록 명하였는데, 이최중이 말하기를,

"신은 청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감히 물러날 수 없습니다."

하자, 임금이 이최중의 직임을 체차하도록 명하고, 인해서 합문(閤門)을 닫고 마침내 보련(步輦)으로 연영문(延英門)을 나갔다. 대간(臺諫)과 옥당(玉堂)에서 앞으로 나와 다투어 고집하자, 임금이 또 모두 체임하도록 명하였다. 대사간 이득종(李得宗)이 말하기를,

"신의 관직을 체임하더라도 전하의 이번 행차는 결단코 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삼사의 신하를 중도 부처(中途付處)014) 하도록 명하였다가, 조금 뒤에 단지 체차하도록 명하였다. 밤 4경(四更)에야 비로소 궁궐로 돌아와 영의정 이천보(李天輔)를 총호사(摠護使)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89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40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王室)

  • [註 014]
    중도 부처(中途付處) : 유배형(流配刑)의 한 가지. 유배 죄인의 평소의 공로 등으로 정상을 참작하여 중간 지점에 한 곳을 지정하여 머물러 있게 하는 형.

○是日, 日城尉 鄭致達卒。 禮單先入, 少頃中宮殿昇遐, 諸臣將詣哭班, 遽命左、右相入侍, 上執手曰: "卿等解此胸中之悲, 使得一洩也。" 左議政金尙魯、右議政申晩等不敢出一語, 但以卽臨早還之意, 陳白而退。 時政院、三司之臣及領議政李天輔, 相繼請對, 上答曰: "已敎于左、右相, 何爲此擧耶?" 仍命承旨入侍。 承旨李最中亟入進前叩頭曰: "當此罔極之時, 殿下奈何作此罔極之擧?" 上連下嚴敎, 最中涕泣爭益力。 上震怒, 命最中退出, 最中曰: "臣不得請, 不敢出。" 上命遞最中職, 仍閉閤門, 遂以步輦出延英門。 臺諫、玉堂進前爭執, 上又命竝遞。 大司諫李得宗曰: "雖遞臣職, 殿下此行, 決不可爲矣。" 上命三司之臣, 中途付處, 已而只命遞差。 夜四更, 始還宮, 以領議政李天輔爲摠護使。


  • 【태백산사고본】 63책 89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40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