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89권, 영조 33년 2월 2일 갑자 2번째기사
1757년 청 건륭(乾隆) 22년
지덕사에 치제하고 양녕 대군의 후손을 조용토록 하다
지덕사(至德祠)에 치제(致祭)하도록 명하였다. 지덕사는 바로 양녕 대군묘(讓寧大君廟)로서, 남관왕묘(南關王廟) 앞에 있는데, 환궁할 때 듣고서 알고 하교하기를,
"양녕 대군은 우리 동방의 태백(太伯)010) 으로, 지덕의 이름을 얻게 된 까닭이다."
하고, 승지를 보내어 그 사우(祠宇)를 살펴보게 하고, 대궐에 돌아오기에 이르러서는 곧바로 관왕묘와 지덕사의 제문(祭文)을 친히 지어서 날짜를 정하지 말고 치제하도록 하였으며, 또 그 사우를 수리하고 후손을 조용(調用)하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89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39면
- 【분류】풍속-예속(禮俗) / 왕실(王室) / 인사(人事)
- [註 010]태백(太伯) :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장자(長子)로, 임금 자리를 아우 계력(季歷)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형만(荊蠻)으로 옮겨가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사양한 일이 있었지만 은미(隱微)하게 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칭찬하는 이가 없었음. 그러나 공자(孔子)가 그 사실을 밝히고 지극히 높은 덕(德)을 가진 분이라고 칭송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