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손 보양관을 선발하고 내린 ‘어제 왕손 교부 절목 의주’
원손 보양관(元孫輔養官)을 선발하고 왕손 교부(王孫敎傅)를 의정(議定)하라 명하였다. 이때 원손의 슬기로운 자질이 숙성(夙成)하니, 임금이 대신에게 말하기를,
"종국(宗國)에는 두 가지 큰 일이 있으니, 원손을 보양(輔養)하는 것과 왕손을 교도(敎導)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한(漢)나라의 가의(賈誼)는 문제(文帝)에게 일찍 교유(敎諭)할 것을 청했던 것이다. 비록 백성이라 하더라도 교유가 중요하거늘, 하물며 제왕(帝王)임에랴? 원손의 나이 지금 5세이니, 이때 보도하는 것을 어찌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보양관 이태중(李台重)이 이미 승자(陞資)하였으니, 누가 그를 대신할 만한가?"
하니, 영의정 이천보(李天輔)가 말하기를,
"서지수(徐志修)·김양택(金陽澤)이 적합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원손을 교양(敎養)하는 방도는 이미 정식(定式)이 있으나 왕손의 경우 사부(師傅)를 두는 예가 없으니, 이는 궐전(闕典)이다. 만약 몽양(蒙養)하는 방도를 다해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를 알게 한다면, 단지 왕손을 성취시킬 뿐 아니라 또한 장차 원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니, 이천보가 말하기를,
"성의(聖意)가 종지(宗支)를 일찍 가르쳐야 한다는 뜻을 깊이 진념(軫念)하고 계시어 이는 실로 국가의 한 없는 복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어서 ‘왕손 교부 절목 의주(王孫敎傅節目儀註)’를 지어 내렸다. 어제(御製)에 이르기를,
"한나라가 의는 문제에게 일찍 교유할 것을 청하였다. 비록 백성이라 하더라도 교유가 중요한 법인데, 하물며 제왕임에랴! 오늘날 한없이 많은 온갖 일 중에서 원손을 선도(善導)하는 것이 곧 첫째 가는 것이다. 나이 지금 5세이나 지각(知覺)이 어른과 다름이 없으니, 이런 때 보도(輔導)를 어찌 조금이라고 소홀히 할 수 있으랴? 《소학초(小學抄)》의 강(講)을 이미 끝냈으니,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사흘을 일차(日次)로 하여 강을 시작하되, 법강(法講)이나 주연(胄筵)과는 차이를 둘 것이고, 무릇 탈품(頉稟)을 제외하고는 강독(講讀)은 두세 줄울 넘지 않도록 하여 간략함을 따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아! 원손을 교양(敎養)하는 방도는 이미 정식(定式)하였는데, 종친(宗親)으로 말하자면, 종학(宗學)이 곧 종친을 교양하는 스승이며, 그 벼슬에는 사교(師敎)하는 의리가 있고, 태학(太學)은 곧 청금(靑衿)161) 을 교양하는 학교로 그 벼슬에 또한 사교하는 의리가 있다. 또 대군(大君)·왕자(王子)에게는 모두 사부(師傅)가 있고 내시 동몽(內侍童蒙)에게도 모두 교관(敎官)이 있으니, 국조(國朝)에서 설치한 것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는가? 그러나 왕손에 이르러서는 교양하는 벼슬이 없는데, 이른바 왕손이란 세자(世子)의 중자(衆子)·서자(庶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니라 세손 이외에는 왕자에 비할 바 아닌데도, 만약 부직(付職)한다면 종친 중 연장자의 뒤가 되는 데 불과하니, 본디 종학이 있어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대학(大學)》 서문에 ‘왕궁(王宮)·국도(國都)로부터 여항(閭巷)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없지 아니하며, 사람이 태어나 여덟 살이 되면 왕공(王公) 이하로부터 서인(庶人)의 자제(子弟)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小學)에 입학한다.’고 이르지 않았던가?
보건대, 동자(童子)162) 가 되기 전에 어찌 가르침이 없을 수 있겠는가? 종친의 아들은 부직하기 전에 각각 그 스승이 있지만 왕손에 대해서는 부직하기 전에 늘 궐중(闕中)에 있으니, 무슨 스승이 있겠는가? 내시(內侍)의 경우 입학하는 자에게는 저절로 교관(敎官)이 있고, 그 밖에 동서(東西) 교훈(敎訓)을 설치하는데, 내시부(內侍府)에서 녹과(祿窠) 둘을 만들어 녹을 주어 가르치니, 동몽 교관의 뜻을 모방한 것인데, 직함은 없고 녹만 있는 것이다. 국초(國初)에 설치한 것이 심상한 데 비길 바 아닌데, 오직 왕손에 대해서만은 사교(師敎)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도리어 내시 동몽만도 못한 것이다. 이는 한갓 사체(事體)를 위하여 하는 말이 아니라 곧 몽양(蒙養)을 소중히 여기는 뜻이다. 예(例)를 정한 뒤에 세손 이하 왕손들의 공상(供上)을 순서대로 질서 정연하게 경오년163) 부터 지금까지 살펴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의복은 말단적인 것임에도 오히려 제도가 정해져 있는데, 교양하는 데 어찌 그 제도가 없을까 보냐? 그렇지 않다면 부직하기 전에는 늘 부시(婦寺)의 손에만 있게 되어 그 배움을 알지 못할 것이니, 어찌 능히 어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는 도리를 알 수 있겠는가?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부직·취학(就學) 전에 동몽 교관의 예에 의거해 스승을 두어 ‘왕손 교부(王孫敎傅)’라 이름하고, 부직한 뒤에 감하(減下)하며, 처소와 범절(凡節)은 왕자 사부(王子師傅)의 예에 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왕손이 비록 많기는 하지만 대군·왕자와는 다름이 있으니, 세자의 중자(衆子)는 적서(嫡庶)를 논할 것 없이 한 사람이 겸한다면, 체모가 존엄해지고 교양하는 것은 실질적인 것이 될 것이다. 더욱이 왕손의 스승을 이제 막 강정(講定)하였으니, 원자(元子)·원손(元孫)이야말로 생각건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찌 제도를 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양관은 능히 웃고 말한 뒤에 보도(輔導)하는 사람에 불과한데, 사부의 이름이 없는 것은 이로 인해 제도를 정했기 때문이다. 원자·원손은 초년에 보양관을 두되, 직품(職品)은 원자 보양관의 경우 이미 《속대전(續大典)》에 실려 있고, 원손 보양관의 경우 종2품과 당상 정3품을 통틀어 차정(差定)한다. 그리고 원자·원손이 여섯 살이 되면 사부를 두는데, 직품은 원자 사부는 정2품으로, 원손 사부는 종2품으로 거행한다면 사리(事理)에 합당할 듯하겠다. 하지만 이는 새로 만든 것이고 국제(國制)가 중요한 것이니,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대신에게 물어보고 등대(登對)해서 품처(稟處)하게 하라. 세자의 중자(衆子)·적서(嫡庶)를 부직하는 품계는 《대전(大典)》에 실려 있으나 연한은 실려 있지 않다. 그러나 대군과 왕자에 비교하건대, 의당 차등이 있어야 할 것이고 여느 종친과도 또한 혼동시킬 수 없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세자와 왕자의 아들은 사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증거댈 만한 문헌이 없으니, 춘추관(春秋館)으로 하여금 《실록(實錄)》을 상세히 살펴 제도를 정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2책 8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633면
- 【분류】왕실(王室) / 인사(人事) / 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161]
○命選元孫輔養官, 議定王孫敎傅。 時元孫睿質夙成, 上謂大臣曰: "宗國有二大事, 元孫輔養、王孫敎導是也。 漢之賈誼請文帝早諭敎。 雖匹庶敎諭重也, 況帝王乎? 元孫年今五歲, 此時輔導, 豈可少忽? 輔養官李台重巳陞資, 誰可代之?" 領議政李天輔曰: "徐志修、金陽澤可也。" 上曰: "元孫敎養之道, 旣有定式, 而王孫則無設傅之例, 是闕典也。 若盡蒙養之方, 而知愛親敬長之道, 則不但成就王孫, 亦將裨益元孫矣。" 天輔曰: "聖意深軫宗支早敎之義, 此實國家無疆之福也。" 上仍製下《王孫敎傅節目儀註》。 御製若曰: "漢之賈誼, 請文帝以早諭敎。 雖匹庶諭敎重也, 況帝王乎? 今日悠悠萬事, 善導元孫, 卽第一也。 年今五歲, 知覺無異成人, 此時輔導, 豈可少忽? 《小學抄》已畢講, 《童蒙先習》三日爲日次始講, 而與法講、冑筵有間, 除凡頉稟, 講讀無過二三行, 務從簡略。 噫! 元孫敎養之道, 旣已定式, 而以宗親言之, 宗學卽宗親敎養之師也, 其官有師敎之義, 太學卽靑衿敎養之館也, 其官亦有師敎之義。 且大君、王子皆有師傅, 內(寺)〔侍〕 童蒙俱有敎官, 國朝設置其豈偶然? 而至於王孫, 無敎養之官, 所謂王孫者, 指世子之衆子、庶子也。 此無他世孫之外, 非王子之比, 其若付職, 不過宗臣年長之後, 自有宗學而然也。 然《大學》序, 豈不云乎 ‘自王宮、國都, 以及閭巷, 莫不有學, 人生八歲, 自王公以下, 以至於庶人之子弟, 皆入小學’。 以此觀之, 成童之前, 豈無敎乎? 宗親之子, 則付職之前各有其師, 而其於王孫付職之前, 長在闕中, 有何師乎? 內侍則入學者自有敎官, 而其外設東西敎訓, 內侍府作祿二窠授祿而訓之, 倣童蒙敎官之義, 而卽無職而有祿也。 國初設置非比尋常, 而惟於王孫無師敎之人, 此反不若內侍童蒙也。 非徒爲事體而言, 卽重蒙養之義也。 定例之後, 世孫以下王孫供上, 次第井井, 其成屬耳, 自庚午至于今, 按而行之。 飮食、衣服末也, 而其猶定制, 敎養豈無其制? 不然, 付職之前, 長在婦寺之手而莫知其學, 焉能知愛親、敬兄之道乎? 此非細故。 予則曰, 付職、就學之前, 依童蒙敎官例設其師, 名曰王孫敎傅, 付職後減下, 處所、凡節依王子師傅例。 王孫雖多, 與大君、王子有異, 勿論世子衆子嫡庶, 一人兼焉, 則體貌尊敎養實。 而況王孫之師, 今方講定, 元子、元孫顧不重也, 而豈無定制? 輔養之官, 不過能笑能語後輔導者, 而其無師傅之名, 因此定制。 元子、元孫初年設輔養官, 而職品則元子輔養官, 旣載《續大典》, 元孫輔養官, 從二品堂上正三品通瀜以差。 元子、元孫年至六歲設師傅, 而職品則元子師傅正二品, 元孫師傅從二品擧行, 則事理似然。 而此是新創, 國制重焉, 令禮官問于大臣, 登對稟處。 世子衆子嫡庶付職之品, 載在《大典》, 而年限無載。 比諸大君, 王子, 宜有差等, 而與凡宗親亦不可混同。 何以然之, 世子、王子之子, 事體異焉者也。 此則文獻無憑, 令春秋館詳考實錄, 定制。"
- 【태백산사고본】 62책 8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633면
- 【분류】왕실(王室) / 인사(人事) / 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