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께 문후하고, 대내 구장에서 ‘체천지보’ 등 인장 3매를 얻다
임금이 동조(東朝)께 문후하였다. 이때 고전(古篆) 3매(枚)를 대내(大內)의 구장(舊藏)에서 얻었는데, 하나는 ‘체천지보(體天之寶)’라 하여 옥으로 만들었고, 하나는 ‘칙명지장(勅命之章)’이라 하여 은으로 만들었으며, 나머지 하나 역시 옥장(玉章)으로 끈이 있었다. 특별히 종이로 전(篆)의 겉면을 봉해 쌌는데, 위에는 숙묘(肅廟)의 어압(御押)이 있고, 곁에는 언자(諺字)로 ‘상서사인(尙書司印)’ 네 글자가 써 있었다. 임금이 그것에 어압이 있다 하여 감히 열어 보지 못하고 또 어느 대(代)의 물건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언자와 진서(眞書)141) 가 음(音)이 비록 비슷하였지만, 뜻이 같지 않은 것이 많으니, ‘서’가 ‘서(瑞)’자인지 ‘서(書)’자인지 ‘사’가 ‘사(事)’자인지 ‘사(司)’자인지를 모두 판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관(史官)을 보내어 영부사 김재로(金在魯)와 판부사 유척기(兪拓基)에게 묻게 했는데, 두 신하가 고사(古事)를 많이 알고 또 평소 금석첩(金石帖)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모르는 바를 알고 있을까 하여 하문(下問)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신하는 모두 상세히 알지 못한다고 우러러 대답하였다. 그 뒤 유척기가 입시하여 아뢰기를,
"고 부사 신상(申恦)이 기록한 바 가운데 ‘병자년142) 여름 경복궁(景福宮)의 성 서쪽 오래 된 우물에서 고전(古篆) 1매를 얻었는데 ‘칙명지장(勅命之章)’이라 써 있기에 그것을 바쳤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이 물건이 그것인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직접 명(銘)을 짓고 또 그 일을 기록하여 모두 양지당(養志堂)의 어의장(御衣欌) 속에 간직해 두게 하였으니, 양지당은 금중(禁中)의 선조(先朝)의 어의(御衣)를 간직해 두는 곳이다. 두 대신이 말하기를,
"체천(體天)·칙명(勅命)은 본조(本朝)에서 쓰는 바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효종 대왕(孝宗大王)께서 심양관(瀋陽館)에 볼모가 되어 계실 때 병화(兵禍)를 겪은 끝에 황조(皇朝)의 유물(遺物)을 많이 얻어 가지고 돌아와 대내에 간직했다고 하니, 어찌 그때 간직했던 것이 아닌 줄 알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자못 그렇게 여기고, 황단(皇壇)143) 의 봉실(奉室)에 간직하려고 하였으나 능히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대신이 임금에게 상서사인(尙書司印)을 열어보기를 청하였으나, 끝내 ‘선조께서 어압하신 바’라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상서원 소장의 옛 마패(馬牌) 1매는 곧 선덕(宣德)144) 9년145) 에 주조(鑄造)한 것인데, ‘상서사인(尙瑞司印)’이라 새겼으니, 아마도 국초(國初)에는 상서원을 상서사(尙瑞司)로 일컬었던 것인가 생각되는데, 옥장에 새긴 것은 끝내 알 수 없었다. 【황조(皇朝)의 연호(年號)를 쓴 마패 13매[顆]를 임금이 또 대내(大內)에서 얻었으므로, 모두 상서원의 옛 마패를 간직하던 궤 속에 간직해 두라고 명하였다. 옛 마패는 모두 황조의 연호가 있다.】
- 【태백산사고본】 62책 88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630면
- 【분류】왕실(王室) / 외교(外交) / 출판(出版)
- [註 141]진서(眞書) : 한자.
- [註 142]
병자년 : 1636 인조 14년.- [註 143]
황단(皇壇) : 조선조 때 명(明)나라의 태조(太祖)·신종(神宗)·의종(毅宗)을 제사지내던 대보단(大報壇)을 말함. 숙종 30년(1704)에 대궐 안에 설치했음.- [註 144]
선덕(宣德) : 명나라 선종(宣宗)의 연호.- [註 145]
9년 : 1434 세종 16년.○上問候東朝。 時得古篆三枚於大內舊藏, 一曰體天之寶, 以玉爲之, 一曰勑命之章, 以銀爲之, 一亦玉章而有紐。 特以紙封裹篆面, 上有肅廟御押, 旁以諺字, 書尙書司印四字。 上以其有御押也, 不敢拆見, 又不知爲何代物。 而諺與眞音雖似, 而義多不同, 書之爲瑞爲書, 司之爲事爲司, 俱未可辨。 遣史官問于領府事金在魯、判府事兪拓基, 以二臣多識古事, 又素蓄金石帖, 故或意知人之所不知, 有下問也。 二臣皆以不可詳仰對。 其後兪拓基入侍奏: "以故府使申恦所記中, 丙子夏, 景福宮城西古井, 得古篆一枚, 書以勑命之章獻之’, 疑此物是也。" 上親自製銘, 又記其事, 竝藏于養志堂御衣欌, 堂在禁中先朝御衣所藏之所也。 二大臣以爲: "體天、勑命, 非本朝所用。 世傳孝宗大王爲質瀋陽館時, 多得皇朝遺物於兵燹之餘, 歸藏大內, 安知非其時所藏歟?" 上頗然之, 欲藏于皇壇奉室, 而未能的知, 故亦未果。 大臣請上拆見尙書司印, 而終以先朝所押不許。 令尙瑞院所藏舊馬牌一枚, 卽宣德九年所鑄, 而刻以尙瑞司印, 抑國初尙瑞院稱司, 而玉章所刻, 終不可知也。 【皇朝年號馬牌十三顆, 上又得於大內, 命竝藏于尙瑞院舊馬牌所藏櫃中。 舊牌則皆皇朝年號也。】
- 【태백산사고본】 62책 88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630면
- 【분류】왕실(王室) / 외교(外交) / 출판(出版)
- [註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