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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87권, 영조 32년 4월 17일 갑인 2번째기사 1756년 청 건륭(乾隆) 21년

명정문에 나가 서울에 들어온 시골 사람 60명을 인견하고 양맥의 풍흉을 묻다

임금이 명정문(明政門)에 나아가 경조(京兆)의 당상관에게 명하여 시골사람으로서 때마침 서울에 들어온 자를 불러 들이게 하니, 그 수가 60명이었다. 비의 많고 적음과 보리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하순(下詢)하기를 마치자, 직접 윤음(綸音)을 지어 비국 당상에게 명하여 선유(宣諭)하게 하였다. 임금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이번에 하교한 뒤 만약 그 효험이 없을 것 같으면, 이것은 마음을 속이는 것이다. 올해 만약 능히 우리 백성들을 살리지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돌아가 뵐 것인가?"

하고, 또 말하기를,

"오늘날 대관(臺官)은 모두 귀와 눈이 없으니, 묵형(墨刑)에 처할 자가 많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2책 87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620면
  • 【분류】
    왕실(王室) / 과학(科學) / 정론(政論)

○上御明政門, 命京兆堂上, 招入鄕民之適入京城者, 其數爲六十矣。 下詢雨澤多少、麥農豐歉訖, 親製綸音, 命堂備宣諭。 上泫然曰: "今此下敎之後, 若無其效, 此欺心也。 今年若不能活我元元, 何顔歸拜乎?" 又曰: "今日臺官, 皆無耳目, 可墨者多耳。"


  • 【태백산사고본】 62책 87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620면
  • 【분류】
    왕실(王室) / 과학(科學)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