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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87권, 영조 32년 3월 5일 계유 3번째기사 1756년 청 건륭(乾隆) 21년

4경에 옛 홍문관에 나가 내린 도백들은 권농에 힘쓰라는 전교

4경에 임금이 옛 홍문관에 나아가 승지를 불러 전교(傳敎)를 쓰게 하였는데, 이르기를,

"오늘 자성(慈聖)께서 나에게 열조(列朝)의 필첩(筆帖)을 보여 주셨는데, 그중 첩 하나는 곧 옛날 능에 거둥하였다가 돌아올 때 부로(父老)들을 위유(慰諭)하신 윤음(綸音)이었다. 십행(十行)으로 말씀하신 뜻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간곡하여 족히 돈어(豚魚)라도 감동시킬 수 있는지라, 두 손으로 공경히 들고 봉완(奉玩)하며 한 글자마다 한 번씩 눈물을 흘렸다. 아! 우리 성고(聖考)의 백성을 위하신 성의(盛意)가 이처럼 진지하셨는데도, 부덕하고 무능하여 만에 하나라도 깊이 유념하지 못하여 옛날 애휼(愛恤)하시던 백성들로 하여금 구렁에 나뒹굴게 만들고 능히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무슨 낯으로 하늘에 계신 조종의 영혼을 뵈올 것인가? 우리 자성(慈聖)께 아뢰어 어필(御筆)을 받들고 나서, 진전(眞殿) 문 밖 재실(齋室)에 앉아 특별히 승선(承宣)을 불러 어제(御製)를 받들어 살펴보게 했더니, 어제 가운데 과연 이 윤음이 있었으며, 그 해는 병자년056) ·정축년057) 즈음이었다. 지난 병자년·정축년을 지금까지도 말을 전하고 있는데, 지난해의 큰 흉년을 겪은 뒤, 이 봄을 당하여 불안해 하는 마음이 밤이나 낮이나 어찌 해이해졌겠는가마는, 경외(京外)의 저축은 바닥이 나고 겨울과 봄 사이에 유개(流丐)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전후에 걸쳐 신칙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건만, 그 효험을 보지 못하니 한밤중에 일어나 생각하매 쓰라림이 나에게 있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에 어필이 어찌 부덕을 가리킨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 여러 도신(道臣)과 삼도(三都)의 유수들은 나의 두려워하는 뜻을 본받아 정성스런 마음으로 구제해 살려 우리 백성으로 하여금 유산(流散)하지 않고 각기 농업(農業)에 힘쓰도록 하라. 종자와 양식이 떨어진 자는 직접 고검(考檢)하되 상격(常格)에 구애되지 말고 뜻을 두어 돕도록 하며, 자신이 몸소 권농관(勸農官)이 되어 농정(農政)에 힘써 가을에 착실한 수확이 있도록 하라. 그러면 어찌 박덕한 나의 다행일 뿐이겠는가? 오르내리시는 혼령도 생각건대, 반드시 아래로 임하시어 기뻐하실 것이다. 아! 그 당시 위유(慰諭)하신 가운데 국가의 정공(正供)도 또한 물려서 바치도록 하셨다. 오늘 충청도 도신이 청한 바 대동미(大同米)를 물려서 바치도록 한 것을 나는 윤허를 아꼈는데, 옛날의 위유와 견주어 본다면 이 또한 부덕(否德)이며 이 또한 본받지 못한 것이니,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진다. 그러니 더욱 심한 고을은 특별히 물려서 바치는 것을 허락한다. 환상(還上)에 이르러서는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고 실로 백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말을 꾸며 하교(下敎)하고 도신에게 문비(問備)하여, 이제 그 종자와 양식을 도와주라고 명하였는데, 만약 그것의 허락을 아낀다면, 이것은 이른바 ‘밀가루가 없이는 떡국을 만들지 못한다.[無麪不托]’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심한 고을에는 또한 절반을 더 나누어 줄 일을 비국(備局)으로 하여금 일체로 분부하게 하라. 아! 옛날의 윤음을 받들어 읽으며 진전의 재실에 앉아 이런 하교를 하니, 이는 오르내리시는 영혼이 양양(洋洋)하시어 우리 백성을 돌보신 뜻이로다. 아! 묘당(廟堂)의 여러 신하들은 부지런히 강구(講究)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백성의 일에 대하여 해이해지지 않도록 하라. 만약 혹시 한가지 일이라도 이익됨이 있거든 ‘작다.’고 말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구제하도록 하여, 나의 한밤중에 면칙하는 뜻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2책 8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15면
  • 【분류】
    왕실(王室) / 호구(戶口) / 구휼(救恤) / 재정(財政)

○四更, 上御舊弘文館, 召承旨書傳敎, 曰:

今日慈聖, 示予列朝御筆帖, 其中一帖, 卽昔年陵幸回鑾時, 慰諭父老綸音。 而十行辭旨, 至誠懇惻, 有足以感豚魚, 雙擎奉玩, 一字一涕。 噫! 我聖考爲民盛意, 若是勤摯, 而以否德無能, 莫能體萬一, 使我昔日愛恤之元元, 顚連溝壑, 而不能濟焉, 將何顔拜陟降乎? 奏我慈聖, 敬奉御筆, 坐於眞殿門外齋室, 特召承宣, 奉準御製, 御製中果有此綸音, 而其年卽丙、丁之際也。 昔之丙、丁, 尙今傳說, 昨歲大歉, 身當此春, 憧憧之心, 夙宵奚弛, 而京外蓄積枵然, 冬春流丐相續。 故前後申飭非一二, 而莫知其效, 中夜興思, 若恫在己。 于今御筆, 豈非指敎否德乎? 咨諸道臣、三都留守, 體予悚然瞿然之意, 誠心濟活, 使吾民不至流散, 各務農業。 種糧之匱乏者, 躬自考檢, 勿拘常格, 着意助之, 身爲田畯, 勉飭農政, 庶幾有秋。 奚徒涼德之幸? 陟降想必下臨而欣喜矣。 噫! 其時慰諭中, 惟正之供, 亦令退捧。 而今日忠淸道臣所請大同退捧, 予則靳許, 仰比昔諭, 此亦否德, 此亦不能體, 不覺恧焉。 尤甚邑特許退捧。 至於還上, 非爲國也, 實爲民也, 故措辭下敎, 問備道臣, 今命助其種糧, 而其若靳許, 此所謂無麪不托也。 尤甚邑亦許折半加分事, 令備局一體分付。 噫! 奉讀昔年綸音, 坐於眞殿齋室爲此敎, 此陟降洋洋, 顧我元元之意。 吁嗟! 廟堂諸臣, 孜孜講究, 勤勤不懈於民。 如或有一事有益, 莫曰其小, 渴心拯濟, 無負予半夜勉飭之意。


  • 【태백산사고본】 62책 8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15면
  • 【분류】
    왕실(王室) / 호구(戶口) / 구휼(救恤)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