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영조실록 85권, 영조 31년 9월 21일 임진 6번째기사 1755년 청 건륭(乾隆) 20년

영의정 이하 노론의 백관들이 당론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상소하다

영의정 이천보 이하 조신(朝臣) 70여 명이 혹 홀로 상소하기도 하고, 혹은 연명 상소하여 모두 당론(黨論)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고백하였는데 모두 노론이었다. 이날에 임금이 약을 중지하고 음식을 물리치며 연달아 엄명을 내려 여러 신하들이 두려워하여 대궐문 밖에 초승(軺乘)이 길을 메우고 초저녁부터 정원(政院)에 정소(呈疏)하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끊어지지 않아 마치 과옥(科屋)에 시권(試券)을 올리는 형상이었다. 이해 봄에 소론으로 조정에 있는 자들이, 역적이 그 당에서 많이 나온 것으로써 모두 두려운 마음을 품고 분분하게 진소(陳疏)해서 후회하여 스스로 새롭게 되는 길을 허락해 달라고 빌어 국시(國是)가 이로 말미암아 크게 안정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노론이 시세(時勢)를 타고 뜻을 쾌히 하여 다시 살육의 단서를 열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또 상소하여 스스로 고백하기를 마치 증빙서처럼 하였는데, 모두 조제(調劑)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61책 85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59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領議政李天輔以下朝臣七十餘人, 或獨疏或聯疏, 皆以不爲黨論自暴, 皆老論也。 是日, 上停藥却膳, 連降嚴命, 群臣震慄, 闕門之外, 軺乘駢闐, 自初昏呈疏政院, 達曙不絶, 殆若科屋呈券之狀。 是年春, 少論之在朝者, 以逆賊多出其黨, 咸懷危懼, 紛紜陳疏, 乞許悔悟自新之路, 國是由是大定。 至是, 上慮老論乘時快意, 復開殺戮之端, 故又使陳章自暴, 有若左契者然, 蓋出調劑之意也。


  • 【태백산사고본】 61책 85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59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