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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82권, 영조 30년 10월 2일 정미 2번째기사 1754년 청 건륭(乾隆) 19년

금군의 참알에 관해 연신에게 이르다

임금이 연신(筵臣)에게 말하기를,

"예전에는 금군(禁軍)이 대궐 안에 입직하면 3일마다 차비문(差備門) 밖에서 참알(參謁)하고, 중관(中官)으로 하여금 그 궁시(弓矢)·전복(戰服) 등속을 점고하게 하였는데, 선조(先朝) 임신년169) 에 특별히 폐지하고 대내(大內)에서 하교하기를, ‘중관의 권세를 초래할까 두렵다.’ 하셨으니, 성려(聖慮)가 깊고 원대하였다. 신축년170) 의 환국(換局) 때에 중관이 무예청(武藝廳)으로 하여금 각문(各門)을 호위하게 했었는데, 경들은 아는가?"

하였는데, 모두 대답하기를,

"모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접때 금군이 참알하는 법을 복구하기를 청한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일부러 윤허하지 않았으나, 한번 참알을 없앤 뒤로는 군장(軍裝)이 한심하므로, 늦추고 당기는 방도가 없어서는 안되겠다. 이 뒤로는 해마다 네 계절의 가운데 달 10일 이전의 사고가 없는 날에 병방 승지는 입직한 금군의 군장을 점고한다는 것을 곧바로 아뢰고, 명정전(明政殿)월대(月臺)에 나아가 병조에서 지급한 군장을 점열한 뒤에 곧 탈이 있고 없는 것을 아뢰되, 그대로 정식(定式)을 삼도록 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금군의 봄·가을 도시(都試)는 뜻이 대개 깊은 것인데, 요즈음 오랫동안 행하지 않았으니, 이 뒤로는 양사(兩司)가 갖추어지지 않더라도 의정(議政)이 가면 반드시 고례대로 행하되, 육냥전(六兩箭)의 보수(步數)는 한결같이 증광시(增廣試)·식년시(式年試)의 예에 의거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8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542면
  • 【분류】
    군사-중앙군(中央軍)

○上謂筵臣曰: "舊則禁軍入直闕內, 每三日參謁於差備門外, 使中官點考其弓矢、戰服之屬矣, 先朝壬申年間特罷之, 自內下敎曰, 恐招中官之權, 聖慮蓋深遠矣。 辛丑換局時, 中官使武藝廳, 護衛各門, 卿等知之乎?" 皆對曰: "不知。" 上曰: "向有人請復禁軍參謁之法, 而予故不許。 然一自除參謁之後, 軍裝寒心, 不可無弛張之道。 此後則每年四仲朔旬前無故日, 兵房承旨直奏入直禁軍軍裝點考, 詣明政殿 月臺, 點閱其自兵曹所給軍裝後, 卽啓有無頉, 仍爲定式。" 又敎曰: "禁軍春、秋都試, 蓋蓋深矣, 而近久不行, 此後則兩司雖不備, 議政若往, 則必依古例行之, 六兩步數, 一依增、式年例。"


  • 【태백산사고본】 59책 8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542면
  • 【분류】
    군사-중앙군(中央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