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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82권, 영조 30년 9월 23일 기해 1번째기사 1754년 청 건륭(乾隆) 19년

부덕을 경계하기 위해 10일 동안의 감선을 행하다

윤음(綸音)을 내렸는데, 대략 이르기를,

"아! 내가 덕이 없는 몸으로 또 더욱 쇠약해져서 기운이 갈수록 피곤해지고 마음이 갈수록 차가워지므로, 수거(修擧)해야 할 것을 수거하지 못하고 신칙해야 할 것을 신칙하지 못하니, 어찌 성탕(成湯)의 육책(六責)165) 만할 뿐이겠는가? 한 번 대리(代理)한 뒤로 나의 책임은 오직 제사(祭祀)·융사(戎事)와 사람을 등용하는 데 있었을 따름인데, 세 계절이 이미 다 가도 막중한 사전(祀典)을 모두 몸소 행하지 못하여 희생(犧牲)이 살찌지 못하고 자성(粢盛)166) 이 깨끗하지 못하니, 신칙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태평한 지 이미 오래 되어 변보(邊報)가 이르지 않으므로 장수는 교만하고 군졸은 게을러져서 융정(戎政)이 날로 무너지고 변방이 허술하고 군기(軍器)가 썩고 무디니, 신칙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경제(經濟)의 방략(方略)을 가진 자가 한갓 집안에서 늙어가고 간성(干城)의 재주를 가진 자도 능히 알 수 없으니, 신칙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이 세 가지도 모두 능히 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나 한 사람의 허물이니, 어찌 신하들을 책망하겠는가? 아! 당습(黨習)을 몇 해 동안 조제(調劑)하여 겉으로는 당이 없는 듯하나 속으로는 실로 예전 그대로이니, 한밤에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두려워진다. 사치한 버릇이 날로 치성해져서 백성의 재물이 날로 없어지고, 온갖 일은 세월만 보내어 모든 공적이 좀스럽고, 이목(耳目)167) 은 주저하며 패초(牌招)를 어기는 것을 일삼고, 탐관 오리(貪官汚吏)는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 사복을 채우고, 뇌물을 쓰며 조급하게 권세를 다투는 일이 날로 더욱 심해지고 있다. 공자(孔子)가 ‘상주더라도 훔치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전(傳)에도 ‘요순(堯舜)·걸주(桀紂)를 백성이 다 따랐다.’ 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다 덕이 없어서 그렇게 되게 한 것이다. 오늘부터 10일 동안 감선(減膳)하여 스스로 삼가는 뜻을 보이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8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542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군사(軍事)

  • [註 165]
    성탕(成湯)의 육책(六責) : 은(殷)나라를 창건한 임금 성탕이 7년이나 큰 가뭄이 들자, 상림(桑林) 들에 나아가 비를 빌면서 "정사가 절도에 맞지 않아서인가? 백성이 직업을 잃어서인가? 궁실을 높게 지어서인가? 궁녀들의 청탁[女謁]이 많아서인가? 뇌물이 나돌아서인가? 참소하는 자가 번창해서인가?" 하며, 이 여섯 가지 일로 자책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 비가 내렸다고 함.
  • [註 166]
    자성(粢盛) : 제수(祭需).
  • [註 167]
    이목(耳目) : 대간(臺諫).

○己亥/下綸音。 略曰:

"噫! 予以否德, 又益衰耗, 氣愈憊心愈冷, 可擧者不擧, 可飭者不飭, 奚徒成湯六責而已? 一自代理之後, 在予之責, 惟祀戎與用人而已, 然三節已盡, 莫重祀典, 皆不躬將, 犧牲不瞃, 粢盛不潔, 其曰能飭乎? 昇平已久, 邊報不至, 將驕卒惰, 戎政日墬, 邊圉踈虞, 軍器朽鈍, 其曰能飭乎? 蘊經濟之略者, 徒老牖下, 抱干城之才者, 亦莫能知, 其曰能飭乎? 惟此三者擧皆不能, 寔予一人之過, 豈責諸臣乎? 吁嗟! 黨習幾年調劑, 而外似無黨, 內實依舊, 中夜思之, 不覺懍然。 侈風日熾, 民財日竭, 百事玩愒, 庶績養脞, 耳目媕婀, 惟事違牌, 貪官汚吏, 剝割自肥, 苞苴躁競, 日以益甚。 不云乎 ‘賞之不竊?’ 《傳》亦不云 ‘, 民皆從之’ 乎? 此皆否德使之然也。 自今日減膳十日, 以示飭躬之意。"


  • 【태백산사고본】 59책 8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542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