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82권, 영조 30년 8월 17일 갑자 3번째기사
1754년 청 건륭(乾隆) 19년
뒷날의 고증을 위해 산도를 모작하여 갖추게 하다
임금이 구(舊) 홍문관에 나아가 좌의정 김상로(金尙魯)·예조 판서 홍상한(洪象漢)을 소견하여 대내(大內)에서 소장했던 산도(山圖)와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이 바친 도본(圖本)을 내보이고 말하기를,
"왕년의 수교(手敎) 가운데에 ‘부지심원(不至甚遠)’이라는 넉 자가 이미 있었는데, 이제 또 자성(慈聖)의 하교를 받았다. 대내에서 소장했던 도본은 곧 내가 신축년153) 에 그려 바친 것인데, 도위(都尉)가 바친 도본을 참조하여 증험해 보았더니, 다시 의심스러운 것이 없었다."
하고, 이어서 세 본(本)을 모작(模作)하여 하나는 정원(政院)에 두고, 하나는 예조에 두고, 하나는 운관(雲觀)154) 에 두어 뒷날의 고증(考證)에 갖추라고 명하였다. 산도는 곧 명릉(明陵)의 국내(局內)에 있는 자전(慈殿)의 뒷날을 위한 곳을 그린 것이다. 능행(陵幸)하고 회가(回駕)할 때에 김한신에게 명하여 뒤져서 상세히 살펴 아뢰게 하였으므로, 김한신이 산형(山形)을 그려 바쳤던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82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539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예술-미술(美術) / 과학-지학(地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