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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81권, 영조 30년 5월 11일 기축 1번째기사 1754년 청 건륭(乾隆) 19년

병조 판서 이창의·훈련 대장 김성응에게 재앙을 막을 방도를 묻다

임금이 병조 판서 이창의(李昌誼)·훈련 대장 김성응(金聖應) 등을 인견하고 재앙을 그치게 할 방책을 물었다. 우부승지 성천주가 아뢰기를,

"덕을 닦고 허물을 살피는 근본은 본디 만화(萬化)의 근원에 달려 있습니다마는, 오늘날 융정(戎政)이 허술하고 변비(邊備)가 오활한 것은 모두 근심스러우니,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을 자주 불러 함께 강구하여 확립하셔야 하겠습니다. 훈련 대장이 바야흐로 입시하였으니, 먼저 융정을 신칙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김성응에게 이르기를,

"우리 동방이 병비(兵備)가 허술한 것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임진란(壬辰亂) 때에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 이항복(李恒福)이 도승지로서 불을 잡고 중전(中殿)을 앞에서 인도하였으니, 경상(景像)을 상상할 만하다. 인묘(仁廟) 때에 의병을 일으킨 공신(功臣)은 모두 곰이나 호랑이처럼 용맹한 무리인데, 일찍이 《남한일기(南漢日記)》를 보매 ‘신하들이 성에 들어올 때 다들 혼미하여 일을 살피지 못하였다.’ 하였으니, 그때의 일도 알 만하다."

하였다. 성천주가 말하기를,

"임진란 때에는 서울에 오위(五衞)의 군사가 있었을 뿐이므로 숙위(宿衞)가 외롭고 약하였으나, 이제는 오위의 군사가 적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외방(外方)의 속오(束伍)는 거의 어린아이 장난과 같고 변지(邊地)의 방어(防禦)는 더욱이 매우 허술하니, 이것은 1백 년 동안 태평하였기 때문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전하께서 일찍이 융정에 유의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옛말에, ‘천자(天子)에게 도(道)가 있으면 지키는 일은 사방의 오랑캐에 있고 제후(諸侯)에게 도가 있으면 지키는 일은 사방의 국경에 있다.’ 하였습니다. 서울에만 유의하고 변지의 일에 유의하지 않으면 좋은 계책이 아닐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김성응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이 뒤로 차대(次對)할 때에 경은 반드시 호환(虎患)과 변비의 허술함을 원량(元良)에게 말하여 경계하고 두려워할 줄 알게 해야 한다."

하였다. 성천주가 말하기를,

"신이 병인년060) 겨울 소대(召對) 때에 ‘분발 진려(奮發振勵)’ 넉 자로 우러러 권면(勸勉)하였더니, 성상께서 하교하시기를, ‘기운이 없기는 하나 9년 동안 이어지는 홍수가 있으면 산을 따라 나무를 벨 것이고, 강역(壃域)에 일이 있으면 친히 시석(矢石)을 무릅쓸 것이다.’ 하셨으므로 성인(聖人)의 지기(志氣)가 쇠약해지지 않은 것을 지금까지 흠탄(欽歎)하고 있는데, 근년 이래로 쇠퇴가 심하십니다. 이제 한 표범의 재앙 때문에 갑자기 경동(驚動)하는 뜻을 가지셨으니, 이것이 바로 좋은 기회입니다. 이제부터 진려 분발하여 병인년 겨울에 하교하신 스물 여섯 글자를 대궐 안에서 편히 계실 때에도 늘 간직하신다면 무슨 일인들 하실 수 없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말이 매우 좋다. 한(漢)나라 문제(文帝)는 다스림에 현묵(玄默)061) 을 숭상하였으나, 한번 감천(甘泉)의 봉화(烽火)를 보고는 친히 세류영(細柳營)에서 고생하였으니, 과연 현묵만 하였을 뿐이 아니다. 이제 혹 일이 있으면 나도 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다마는, 어찌 잘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성천주가 말하기를,

"하루에 임금이 보살피는 여러 가지 정무(政務)는 절반 이상이 부서(簿書)의 번거롭고 수없이 많은 일인데, 이제는 잗단 것을 모두 동궁(東宮)에게 맡기고 전하께서는 군국(軍國)의 큰일만 맡으셨으니, 이때에 멀고 큰 것에 유의하시면 천고(千古)의 큰 사업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인심을 굳게 맺고 강역을 삼가 지키며 인재를 얻고 저축을 많이 하는 것이 지금 긴요한 방도가 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8책 81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525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과학-생물(生物) / 역사-고사(故事)

  • [註 060]
    병인년 : 1746 영조 22년.
  • [註 061]
    현묵(玄默) : 말이 없이 조용함.

○己丑/上引見兵曹判書李昌誼、訓錬大將金聖應等, 問消弭之策。 右副承旨成天柱奏曰: "修省之本, 固在於萬化之原, 而今日戎政之踈虞, 邊備之迂闊, 無非可憂, 宜頻召大臣及備堂, 與之講確。 訓將方入侍, 先飭戎政好矣。" 上謂聖應曰: "我東兵備之踈虞, 何可言也? 壬辰之亂, 鰲城府院君 李恒福以都承旨, 執燭前導中殿, 景像可想。 仁廟朝擧義功臣, 皆熊虎之流, 而曾見《南漢日記》, 則 ‘諸臣入城時, 皆昏不省事’ 云, 其時事亦可知矣。" 天柱曰: "壬辰則都下只有五衛軍而已, 宿衛單弱, 而今則五衛軍兵不可謂少。 然外方束伍殆同兒戲, 邊地防禦尤極踈闊, 此不但昇平百年之致, 亦由殿下未嘗留意於戎政而然耳。 古語曰; ‘天子有道, 守在四夷, 諸侯有道, 守在四境。’ 若只留意於都下, 不復留意於邊事, 非計之得也。" 上顧聖應曰: "此後次對, 卿須以虎患及邊備踈虞, 言于元良, 使知戒懼可也。" 天柱曰: "臣於丙寅冬召對, 以奮發振勵四字仰勉, 則上敎有曰; ‘氣雖薾然, 若有九年之水, 則當隨山刊木, 壃域有事, 則當親冒矢石,’ 聖人志氣之不衰, 至今欽歎, 而近年以來消沮退縮甚矣。 今因一豹之災, 頓然有驚動之意, 此正好機會。 自今振勵奮發, 使丙寅冬廾六字, 恒存於燕蠖之中, 則甚事不可做乎?" 上曰: "此言甚好。 文帝治尙玄默, 而一見甘泉之烽, 親勞細柳營, 果不徒玄默而已。 今或有事, 則予亦非不爲之人也, 但豈能善爲乎?" 天柱曰: "一日萬幾, 太半簿書繁氄之事, 而今則細瑣者都付東宮, 殿下則只管軍國大事, 趁此時留意於遠者大者, 則可以做得千古大事業矣。" 上曰: "固結人心, 愼守疆域, 得人才厚儲蓄, 爲當今要道矣。"


  • 【태백산사고본】 58책 81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525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과학-생물(生物) / 역사-고사(故事)